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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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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미수 허목선생은 권목이 수십 년 전에 고화인 산수도 8폭을 보여주어서 보니 비단이 해지고, 찢어져서 보이지 않는 데가 많았으나 더욱 기이하고, 예스러워서 명화라 말했다. 권목이 죽고, 아들 권성중이 수묵으로 사시팔경을 그린 산수화를 보여주면서 우리 집에 전해 온 안견의 솜씨라 하므로, 권목이 살아 있을 때에 같이 감상한 것인데, 오래되어서 생초가 해지고 찢어졌으나 옛 자취가 아직 남아있고, 생사간의 느낌이 진실로 괴로웠다고 말하고, 옛 부터 유명한 서화는 천백 년을 전하면서 몇 사람이나 열람했으며, 사람에게 얼마나 옛 감상을 일으키게 하였던가 라고 기록하고 있다.
-안견(安堅)의 산수도첩(山水圖帖) 서문-
수십 년 전에 권목(權穆)이 나에게 고화(古畫)인 산수도 8폭을 보였다. 비단이 해지고 찢어져서 보이지 않는 데가 많았으나 더욱 기이하고 예스러워서 명화(名畫)라 일컬었다. 아, 권목(權穆) 군은 벌써 죽었고 내가 그 무덤에 지문(誌文)도 지었다.
그의 후사(後嗣) 권성중(權聖中)이 나를 자기 선인(先人)처럼 여기는데, 하루는 나와 함께 동방의 명화(名畵)를 논하고 인하여 경초(京綃)에다 수묵(水墨)으로 사시팔경(四時八景)을 그린 산수화를 보이면서, “이 그림이 우리 집에 전해 온 지가 벌써 오랜데, 안견(安堅)의 솜씨라 합니다.”하였다.
이것은 곧 내가 수십 년 전에 그의 선대인이 있을 적에 처음 본 것이었다. 오래된 생초(生綃)가 해지고 찢어졌으나 옛 자취가 아직 남았다. 서로 대하여 슬퍼하니, 생사(生死)간의 느낌이 진실로 괴로웠다. 예부터 유명한 서화(書畫)는 천백 년을 전하면서 몇 사람이나 열람했으며, 사람에게 얼마나 옛 감상을 일으키게 하였던가. 느낌이 있어서 적는다.
1667년(현종 8) 중추월 달 밝은 밤중에 미수(眉叟) 허목(許穆)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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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견의 산수도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