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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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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표암 강세황선생이 말하기를, 명필은 여러 체를 잘 쓰는 사람이 없었다. 당나라 서예가 장욱은 초서로 이름이 났는데, 낭관청벽기라는 해서로 쓴 첩 하나가 전할뿐이다. 송나라의 서예가 미불은 평소에 해서를 쓰지 않았다. 서원아집도서 같은 것은 정성을 드려서 해서로 썼지만, 결국은 초서로 법을 지녔으니, 비로소 예술의 극치에 달한 사람이라도 두 가지를 다 잘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조윤형의 서첩은 고예 ‧ 해서 ‧ 행서 ‧ 초서의 여러 서체가 모두 높은 경지에 이르지 않는 것이 없으니, 아마 옛날에도 이런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고 극찬하고, 장욱과 미불에게 이것을 보여 준다면 어떻게 말할지 모르겠다. 나도 어릴 적부터 글씨 쓰기를 좋아했지만 철저하게 공부하지 못하였고, 지금은 이미 늙어서 붓과 벼루를 멀리한지 오래다. 이것을 보니, 내가 페르시아에 들어선 듯 여러 보물들이 내 눈을 빼앗아 무엇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 감탄한 나머지 두어 마디를 쓰니, 뒤에 이첩을 보는 사람이 내가 당돌하게 아는 척한다고 비웃지 않겠는가? 라고 말했다.
-조윤형(曺允亨)이 여러 서체로 쓴 글씨 뒤에 씀-
옛날 명필은 여러 체를 다 잘 쓰는 사람이 없었다. 중국 당나라 서예가 장욱(張旭)은 초서로 이름이 났는데, 낭관청벽기(郎官廳壁記)라는 해서로 쓴 첩 하나가 전할뿐이다. 송나라의 서예가 미불(米芾)은 평소에 해서를 쓰지 않았다. 서원아집도서(西園雅集圖序)같은 것은 정성을 드려서 해서로 썼지만 결국은 초서로 법을 지녔으니, 비로소 예술의 극치에 달한 사람이라도 두 가지를 다 잘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송하 조윤형의 이 서첩은 고예 ‧ 해서 ‧ 행서 ‧ 초서의 여러 서체가 모두 높은 경지에 이르지 않는 것이 없으니, 아마 옛날에도 이런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장욱과 미불에게 이것을 보여 준다면 어떻게 말할지 모르겠다.
나도 어릴 적부터 글씨 쓰기를 좋아했지만 철저하게 공부하지 못하였고, 지금은 이미 늙어서 붓과 벼루를 멀리한지 오래다. 이것을 보니, 내가 이란이슬람공화국에 들어선 듯 여러 보물들이 내 눈을 빼앗아, 무엇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 감탄한 나머지 이 두어 마디를 쓴다. 뒤에 이첩을 보는 사람이 내가 당돌하게 아는 척한다고 비웃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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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 조윤형의 서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