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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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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동명 정두경선생은 우리나라 여러 서예가의 필적을 보고 아는 기록을 청하기에 그 세대를 고찰해보니, 첫째가 신라의 김생이요. 그 다음은 이암, 그 다음은 안평대군, 성수침, 황기로, 김구, 송인, 양사언, 백광훈, 한호, 김현성 등 11인 이었다. 김생의 글씨는 송나라 사람이 보고 크게 놀라 ‘뜻하지 않게 오늘 왕희지의 필적을 다시 보게 되었소’ 라고 할 정도다. 오래된 일이라 가히 논할 것이 없지만, 이암과 안평대군, 한호 또한 이름이 중국까지 알려졌음은 세상이 아는 바이며, 김구와 성수침, 황기로, 양사언, 송인, 백광훈, 김현성의 필체는 비록 같지 않지만 모두 오묘한 것은 매한가지이다. 우리나라에는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많다. 땅이 치우치고 여러 번 전쟁을 겪느라 고인의 필적이 산실되어 전하지 않음을 내가 늘 한스럽게 여겼다. 이제 숨어있는 것을 수집하여 필첩하나로 만들었으니, 그 뜻이 또한 근실하다 하겠다. 안평대군에서 부터 김현성에 이르기까지 9인은 조선의 인물로 구하기기 그래도 쉬웠겠지만, 이암은 고려의 인물이라 어렵지 않았겠는가. 김생에 이르러서는 신라 사람이므로 지금으로 부터 1.000여년의 간극이 있는지라 구릉과 계곡도 변하였을 것이니, 이 글씨가 몇 번이나 병화를 겪고, 지금까지 탈 없을 수 있었겠는가. 라고 말하고 정말 독실하게 좋아하지 않는다면 1.000년 뒤에 어찌 구하여 책 앞머리에 얹을 수 있겠는가 진정 늦게 태어났지만 옛것을 좋아하는 당나라의 문호인 한유이라 할 만하다고 기록하였다.
-대동필종(大東筆宗)의 시첩에 대한 서문(序文)-
우리나라 여러 공의 필적을 나에게 보여주고 지(識)를 청하기에 그 세대를 고찰해보니, 첫 번째가 신라의 김생(金生)이요. 그 다음은 행촌 이암, 그 다음은 안평대군 이용, 청송 성수침, 고산 황기로, 자암 김구, 이암 송인, 봉래 양사언, 옥봉 백광훈, 석봉 한호, 남창 김현성 등 11인 이었다.
김생의 글씨는 송나라 사람이 보고 크게 놀라 ‘뜻하지 않게 오늘 왕희지의 필적을 다시 보게 되었소’ 라고 하였는데, 오래된 일이라 가히 논할 것이 없지만, 행촌 이암과 안평대군 이용, 석봉 한호 또한 이름이 중국까지 알려졌음은 세상이 아는 바이다. 자암 김구와 청송 성수침, 고산 황기로, 봉래 양사언, 이암 송인, 옥봉 백광훈, 남창 김현성의 필체는 비록 같지 않지만 모두 오묘한 것은 매한가지이다.
우리나라에는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많다. 땅이 치우치고 여러 번 전쟁을 겪느라 고인의 필적이 산실되어 전하지 않음을 내가 늘 한스럽게 여겼다. 이제 아무개가 두루 숨어있는 것을 수집하여 필첩하나로 만들었으니, 그 뜻이 또한 근실하다 하겠다. 안평대군 이용에서 부터 남창 김현성에 이르기까지 9인은 조선의 인물로 구하기기 그래도 쉬웠겠지만, 행촌 이암은 고려의 인물이라 어렵지 않았겠는가. 김생에 이르러서는 신라 사람이므로 지금으로 부터 1.000여년의 간극이 있는지라 구릉과 계곡도 변하였을 것이니, 이 글씨가 몇 번이나 병화를 겪고, 지금까지 탈 없을 수 있었겠는가. 아, 이 또한 기이하다.
정말 독실하게 좋아하지 않는다면 1.000년 뒤에 어찌 구하여 책 앞머리에 얹을 수 있겠는가? 진정 늦게 태어났지만 옛것을 좋아하는 중국 당나라의 문호인 한유(韓愈)이라 할 만하다. 마침내 짧은 율시를 붙인다.
김생이 떠난 후 1.000년의 세월 필적을 오늘 아침에 보게 되었네.
용과 범이 서로 할퀴는 듯 강과 산이 절로 들썩거리네.
나머지도 모두 기운이 생동하니 오래 되어도 아직 바람이 이네.
궤안에 기대어 늘 완상하니 밤낮이 가는 줄 도통 잊겠네.
1665년(현종 6) 6월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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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산 황기로의 오언율시 초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