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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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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표암 강세황선생은 논자들이 백하 윤순의 글씨는 그 앞에 옛사람도 따를 수 없다고 말하고, 그 뒤에 올 사람도 따를 수 없다고 하는데, 반드시 다 그러한 것은 아닐 것이다. 윤순의 굳세고 정묘한 자태가 마구 솟아나지만, 끝내 석봉 한호의 웅장하고 빼어나며 두텁고 질박한 것을 본받아 그 위에 이를 수는 없었다며, 근래 한두 작가가 모두 윤순에게 근원을 두고 있지만, 또한 윤순을 본받아 그 위에 이를 수는 없다. 그 앞에 옛사람도 따를 수 없다는 것은 지나치겠지만, 그 위에 올 사람이 따를 수 없다고 한 것은 정말 그러하다. 글씨는 작은 기예이지만 또한 세상을 따라 오르내리는 것이 이와 같다. 내가 이에 대하여 감개와 탄식을 이길 수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백하(白下) 윤순(尹淳)의 서첩에 씀-
논자들이 백하(白下) 윤순(尹淳)의 글씨는 그 앞에 옛사람도 따를 수 없고 그 뒤에 올 사람도 따를 수 없다고 하는데, 반드시 다 그러한 것은 아닐 것이다. 백하 윤순의 굳세고 정묘한 자태가 마구 솟아나지만, 끝내 석봉(石峯) 한호(韓濩)의 웅장하고 빼어나며 두텁고 질박한 것을 본받아 그 위에 이를 수는 없었다.
근래 한두 작가가 모두 백하 윤순에게 근원을 두고 있지만, 또한 백하 윤순을 본받아 그 위에 이를 수는 없다. 그 앞에 옛사람도 따를 수 없다는 것은 지나치겠지만, 그 위에 올 사람이 따를 수 없다고 한 것은 정말 그러하다. 글씨는 작은 기예이지만 또한 세상을 따라 오르내리는 것이 이와 같다. 내가 이에 대하여 감개와 탄식을 이길 수 없다.
1787년(정조 11) 봄에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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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하 윤순의 초서글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