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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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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갈암 이현일선생은 내가 평생에 이황선생의 필적을 많이 보았는데, 비록 글씨에 대해서 식견은 없지만 매번 단정하고 엄숙하며 삼가고 무거워 심획의 바름을 얻은 데 대해 감탄하였다고 말하고, 전해 내려오는 필적이 모두 판각한 것들이라서 항상 진적이 드문 것을 한으로 여겼었다. 홍유범의 집에 소장하고 있는 필적을 보니 그 정신과 활법이 전날 보았던 인본과 비교하면 진본과 사본 같은 차이가 있으니, 더욱 사람으로 하여금 공경하는 마음이 일게 한다. 당나라의 서예가 유공권이 이른바, “마음이 바르면 글씨가 바르다.”라는 말과 한나라의 양웅이 이른바, “자획의 모습에서 군자와 소인을 본다.”라고 한 말을, 이것을 보면 더욱 믿을 수 있다. 홍유범군이 특별히 생각하여 보여 주고 나서 그 뒤에 발문을 써 주기를 청하였다. 이황의 필적 아래에 나처럼 고루한 사람의 말을 넣을 수 없는 것인데 감히 경솔하게 손을 대서 불두착분의 비난을 초래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홍유범군의 청을 저버릴 수 없고, 내가 마음에 느낀 것이 또 이와 같기에 그 뒤에 써서 돌려보낸다고 기록하였다.
-홍유범(洪游範)이 찬집한 이황(李滉)선생의 필적(筆蹟) 뒤에 씀-
내가 평생에 퇴계(退溪) 이황(李滉)선생의 필적을 많이 보았는데, 비록 글씨에 대해서 식견은 없지만 매번 그 단정하고 엄숙하며 삼가고 무거워 심획(心畫)의 바름을 얻은 데 대해 감탄하였다. 다만 전해 내려오는 필적이 모두 판각한 것들이라서 항상 진적(眞蹟)이 드문 것을 한으로 여겼었다.
지금 홍유범(洪游範)의 집에 소장하고 있는 필적을 보니 그 정신(精神)과 활법(活法)이 전날 보았던 인본(印本)과 비교하면 진본(眞本)과 사본(寫本) 같은 차이가 있으니, 더욱 사람으로 하여금 공경하는 마음이 일게 한다. 중국 당(唐)나라의 서예가 유공권(柳公權)이 이른바, “마음이 바르면 글씨가 바르다.”라는 말과 한(漢)나라의 양웅(揚雄)이 이른바, “자획(字畫)의 모습에서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을 본다.”라고 한 말을, 이것을 보면 더욱 믿을 수 있다. 홍유범군이 특별히 생각하여 보여 주고 나서 그 뒤에 발문(跋文)을 써 주기를 청하였다.
대현(大賢)의 필적 아래에 나처럼 고루한 사람의 말을 넣을 수 없는 것인데 감히 경솔하게 손을 대서 불두착분(佛頭著糞)의 비난을 초래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홍유범군의 청을 저버릴 수 없고, 내가 마음에 느낀 것이 또 이와 같기에 그 뒤에 써서 돌려보낸다.
1685년(숙종 11)중춘(仲春)에 재령인(載寧人) 이현일(李玄逸)은 남악촌사(南岳村舍)에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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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선생의 글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