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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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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공개적으로 우는 남자들 좀 있다. 심리학에서는 우는 행위를 일종의 퇴행 현상으로 간주한다. 아기들이 우는 이유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을 충분히 갖고 있지 않기 때문으로 본다. 따라서 성인이 된 후에도 눈물을 보인다는 건 이성적인 판단이 미숙하다는 증거가 된다. 눈물은 반사적 눈물과 정서적 눈물로 구분된다. 반사적 눈물은 이물질 등의 유입에 맞서 안구를 보호하기 위해 분비되는 눈물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눈물은 정서적 눈물을 뜻한다.
해외 연구에 의하면 반사적 눈물을 담당하는 3차 신경이 절단돼 눈물 분비 기능을 잃은 환자들도 정서적인 자극을 받으면 여전히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이는 정서적 눈물이 태생적인 요인에 의해 과학적, 생리학적 반응을 나타내는 건 아니라는 의미한다. 즉, 남성이 여성보다 우는 경우가 적은 것은 사회적 학습의 결과라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자의 눈물은 금기시돼 왔다. ‘대장부는 쉽게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고 교육하는 중국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남자에게 반감을 갖고 경시하기까지 한다. 여기서 ‘쉽게’라는 말에 주목하시라! 남자라 해서 절대 울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은 아니다.
사실 오랫동안 남성들은 여성보다 이성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역사적으로 수많은 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면서 남성은 여성보다 강하고 우월한 존재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고 언제부턴가 남자가 흘리는 눈물에 대한 봉인이 풀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지 않게 된 사회상을 반영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텔레비전에서 우는 남자를 찾아보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드라마에서는 우는 남자가 빠져서는 안 될 흥행 장치로 자리 잡았다. 그 도도하고 오만하기가 하늘을 찔렀던 김주원도 길라임 때문에 눈물을 찔찔 짜지 않았던가? 사회 전체적으로는 몰라도 적어도 여자들에게 남자의 눈물이 문제가 되지 않게 된 건 8할이 고마운 텔레비전 덕분이다.
최근 자신의 남자친구가 떼를 쓰며 징징거리며 우는 모습이 귀엽다는 여성을 만났다. 최소한 그가 우는 모습이 느끼하진 않더란다.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문 케이스이고 정말 중요한 순간에 보이는 남자의 눈물 때문에 마음을 바꾼 여성들도 의외로 많다고 한다. 남자가 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남자의 눈물에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더란 것이 그녀들의 간증이다. 차라리 슬픈 일을 겪었을 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가 강해 보이기보단 오히려 차갑게 보이더란 말도 함께 곁들이면서!
이는 달리 말하면 적재적소에 잘만 사용하면 남자의 눈물은 극적인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훌륭한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되는 셈이다. ‘눈물의 커뮤니케이션’ 기능은 최근 우리가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거리는 화면에서 줄곧 봐온 기능이다. 의도적으로 남자의 눈물을 사용하는 이들도, 이를 의도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모두 눈물의 원래 의미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것이 ‘악어의 눈물’이든 잘 재단된 눈물이든 간에 행위와 목적으로서의 눈물이라는 것을 알기에 감흥보다 비난이 앞섰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씁쓸한 커뮤니케이션이 아닐 수 없다.
‘카테콜아민’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은 눈물을 통해 배출된다고 한다. 가설에 불과하지만 남자가 여자보다 평균수명이 짧은 이유는 여자가 덜 울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니 남자들이여, 마음껏 눈물을 흘려도 좋은 시대가 도래했다. 단, 뭐든지 과하면 모자람보다 못하니 가끔씩 그것을 맘놓고 흘려도 될 듯하다. 분명 열 마디 말보다 탁월한 효과를 발휘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