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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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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의 명산 팔공산 자락 해발 850m에 “갓 바위” 라는 특이한 불상이 있다. 본래 명칭은 ‘관봉 석조 여래 좌상’으로 보물 제431호로 지정돼 있다. 선덕여왕 때 의현대사가 어머니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갓 바위는 표현대로 머리에 갓을 쓴 모습을 하고 있다. 그 갓이 대학의 학사 모 모양과 같아 수능 철이 되면 자녀들의 대학 합격을 기원하는 학부모들로 넘쳐난다. 서로 어깨가 부딪치고 흙먼지를 날리는 모습이 명절날 시장 통을 방불케 할 정도다.
이곳에서는 염원을 하면 한 가지 소원을 꼭 들어준다는 속설이 있어 가족의 안녕과 자녀의 수능 대박을 기대하며 108배를 사양치 않는다. 절대적인 영험이 있는 것에 대한 기댐은 나무랄 일이 아니지만, 속내를 들어 다 보면 양초 하나와 쌀 한 되 놓고 너무나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어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전국시대 제나라에 기지가 넘치고 말솜씨가 아주 뛰어난 순 우곤(淳于髡)이란 사나이가 있었다. 그는 자주 제후 앞에 사절로 나갔지만 한 번도 모욕을 당한 일이 없었다. 제나라 위 왕 8년(기원전 349년)에 이웃의 강대국인 초나라가 쳐들어 왔다. 국력이 부족한 제나라 위 왕은 순 우곤 을 조나라에 보내 원군을 청하기로 했다.
위 왕은 사절로 나가는 순 우곤 에게 조나라 왕에게 바치는 예물로 황금 백 근, 사두마차 열 대를 준비했다. 이 예물을 본 순 우곤이 갑자기 하늘을 우러러보며 크게 웃으니 갓끈이 죄다 끊어지고 말았다. 깜짝 놀란 왕이 물었다.
“선생은 예물이 적다는 건가?” 순 우곤 이 대답했다.
“신이 어찌 감히 그렇다고 하겠습니까?” 그러자 왕이 다시 물었다.
“하지만 웃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게 아니오?” 순 우곤 이 말했다.
“지금 신이 동쪽에서 오는 길에 길가에서 풍작을 비는 사람을 보았는데, 돼지 발 하나와 술 한 잔을 손에 들고 이렇게 빌었습니다. <높은 밭에서는 광주리에 넘치고 낮은 밭에서는 수레에 가득하게 오곡이 풍성하게 익어 우리 집에 넘쳐나게 해 주십시오>
신은 그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그처럼 적으면서 원하는 바가 그처럼 큰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걸 생각하고 웃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위 왕은 순 우곤 의 의중을 알고 서둘러 예물을 황금 천 일, 백벽(白璧) 열 쌍 ,사두마차 백 대로 늘렸다. 제대로 모양을 갖춘 순 우곤 은 그제 서야 조나라를 향해 떠났다.
조나라에 사신으로 간 순 우곤 은 왕을 설득해 정병 10만 명과 전차 천대를 지원받는 성과를 거두었다. 한편 제나라를 침공한 초나라는 조나라가 개입하려 하자 제 빨리 어둠을 타서 군대를 철수시켰다.
나라간 외교사절의 예물은 보내는 나라의 성의표시이다. 진정성을 가지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당연함은 물론 차후 상대국이 어려움이 당할 땐 기꺼이 도울 거란 약속을 해야 한다. 서로 간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런 중차대한 대사를 앞에 두고 적게 주고 많이 받으려 한다는 것은 한심한 발상이다.
자녀 한두 명을 낳는 시대에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일자리가 줄어들자, 모두들 노후를 걱정한다. 과거처럼 자녀들에 기대어 봉양을 받는 다는 것은 상상 할 수도 없다. 노후 걱정 없이 부를 축적하지 못한 사람들은 평소에 연금이나 보험을 열심히 들어야 한다. 연금이나 보험은 세금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담보하는 적립금인 것이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속내를 보면 자신이 평소 납부한 금액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받는 것이 적다고만 푸념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제물(祭物)을 적게 놓고 바라는 것은 큰 것이다.
이 뿐만 아니다. 남녀 간의 혼사 문제도 그렇다. 양가가 서로 부담한 것은 잊어버리고 상대방이 적다고 트집을 잡는가 하면, 자신의 처지는 생각지 않고 눈만 잔뜩 높여 최소한 의사 변호사 정도가 되어야 한다며 호기를 부리는 모습 그리 낮 설지 않다.
경제 민주화가 이뤄진 이 시대에 근로자의 임금착취란 용어는 사라졌다. 당당히 합당한 보수를 주장하며 사용자에 맞설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완벽히 갖춰졌다. 급여나 연봉의 경우 근로자와 사용자가 서로의 이익이 합치되는 점에서 적절하게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근로자는 자신이 일한 만큼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불평을 하고, 기업주는 인건비 주고나면 남는 게 없다고 엄살을 떤다. 모두가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이다.
우리는 먼저 가족과 친구 그리고 직장과 사회와 국가에 대해 얼마만큼의 기여를 했는지를 먼저 살펴 본 후 대가를 바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