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 우암 송시열선생이 말하기를 이 글씨는 우리 효종대왕이 처음 잠저에 있을 때 장선충에게 내린 수찰이며, 효종은 본시 장선충과 포의의 벗으로서 그 정의가 매우 친밀하였음을 첩에서 알 수 있다. 벗이란 인륜의 하나이다. 효종이 임어한 이래로 매양 천리를 밝히고 인심을 바로잡는 것으로 요도를 삼았는데, 이편을 본다면 나머지도 알 수 있으며, 장선충을 알 수 있는 것도 어찌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이번에 장선충이, 나 같은 천신을 외람되게 옛 벼슬아치라 하여, 봉하고 싼 것을 보여 주는데, 그 봉함을 떼기도 전에 피눈물이 뺨에 마구 흘러내려서 차마 봉독하지 못하고, 삼가 절하고 나서 감히 그 밑에 발문을 붙인다. 먼 훗날에 이것으로써 내 마음을 아는 이가 있을 줄 안다고 기록하였다.
-장선충(張善冲)이 간직한 효종대왕의 손수 쓴 글씨에 발문-
이는 우리 효종대왕(孝宗大王)이 처음 잠저(潛邸)에 있을 때 장선충(張善冲)에게 내린 수찰이다. 효종은 본시 장선충과 포의(布衣)의 벗으로서 그 정의가 매우 친밀하였음을 이 첩(帖)에서 알 수 있다. 아, 벗이란 인륜(人倫)의 하나이다.
효종이 임어(臨御)한 이래로 매양 천리(天理)를 밝히고 인심(人心)을 바로잡는 것으로 요도(要道)를 삼았는데, 이 편(編)을 본다면 나머지도 알 수 있으며, 장선충을 알 수 있는 것도 어찌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이번에 장선충이, 나 같은 천신(賤臣)을 외람되게 옛 벼슬아치라 하여, 봉하고 싼 것을 보여 주는데, 그 봉함을 떼기도 전에 피눈물이 뺨에 마구 흘러내려서 차마 봉독(奉讀)하지 못하고, 삼가 절하고 나서 감히 그 밑에 발어(跋語)를 붙인다. 아, 먼 훗날에 이것으로써 내 마음을 아는 이가 있을 줄 안다.
1678년(숙종 4) 월 일에 죽지 못한 신하 송시열(宋時烈)은 손 씻고 삼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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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대왕의 어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