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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서화평론’ <56> 동래부순절도(東萊府殉節圖) 그림에 대한 기록을 적다

온라인 뉴스부 기자 / 입력 : 2012년 12월 28일
독립큐레이터 이택용
ⓒ 경북문화신문

해설 : 유회당 권이진선생은 동래부순절도를 보고 쓰기를 그림 가운데에 중성에서, 하늘 높이 솟은 것은 객관이며, 홍포에 오모를 쓰고 뜰에서 북향하여 몸을 굽히고 있는 것이, 동래부사 송상현 공이 조용히 의리를 위해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이다. 한 사람이 송상현의 뒤에 서서 죽음을 나아가려는 것이 겸인 신여로고, 젊은 여인이 관아의 담을 타고 송상현 공에게 나아가다 왜적에게 잡히는 것이 시첩 김섬으로, 기생 이지만 또한 열녀이다. 정원루가 객관의 왼쪽에 있다. 가운데에 두 사람이 난간에 시신으로 누워 있는 것이 혁혁한 노개방과 그의 제자 문덕겸이다. 노공은 이 고을에 교수로 부임하여 위판을 받들어 모시고 재직하다가 직분을 위하여 죽었고, 그의 제자 문생은 스승에게 배운 바를 저버리지 않았다. 양조한이라는 이가 함께 죽었다고 하는데 전하는 것이 상세하지 않아 함께 열거하지 못하니, 애석하도다. 용맹스러운 양산군수 조영규가 충분 강개한 마음으로 달려와서 함께 죽었다. 활을 잡고 왜적을 사살하려다 왜적에게 팔이 잘렸는데, 팔이 펄떡 펄떡 살아 잇는 듯 하니 한 몸이 모두 의기라 할 것이다. 거리에서 싸우고 길에서 막으면서 힘을 다해 왜적을 죽이다가 힘이 다하여 죽는 모습이 있으니, 3사람은 2명의 비장과 1명의 아전으로 김희수·송봉수·송백이 그들의 성명이다. 아름다운 장부여! 누구의 집을 걸터앉아 기와를 던져 왜적을 죽이는가. 2여인이 이를 도와 혹은 지붕을 걷어내고 혹은 기와를 집어 주네. 장부는 씩씩하고 여인은 얼마나 기특한가. 장부는 김상인데, 여인은 누구의 아내이며 딸이든가. 이름이 인몰되어 전하지 않으니 슬프도다. 북문 밖에는 길로 달아나는 자가 있으니 허겁지겁 도망가느라 몸가짐을 잃었고 미친 듯이 내달리느라 뒤 돌아 보지도 않는다. 그는 평시의 경상좌병사 이각으로서 국은을 받아 영화를 누림이 어떠하였던가. 하루아침에 국가의 위기를 만나서는 하루의 힘도 바치려 하지 않고 머리를 감싸고 쥐처럼 숨어 잠깐의 목숨을 훔치고 있으니, 나라에 법이 있다면 진실로 잡아 죽여서 그 피를 북에 발라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이각의 일을 말하기를 부끄럽게 여긴다. 사람들이 역사서를 읽다가 충신열사의 일에 이르면 그 사람의 뼈가 이미 썩었고 그 사건의 그림자도 없어졌으며 나와 연관된 애정과 친분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내가 그를 위하여 눈물 콧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것은 진실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함께 부여된 천리가 본래 내 마음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임금을 위하여 죽고 성을 지키다가 죽었기에 그 강개하고 비상한 마음을 그리워함이 더욱 큼에 있다. 옛날 동래부사 윤훤이 사당을 지어 송상현 공을 제사를 지냈다. 동래부사 민정중·이지익 공이 고향 늙은이에게 물어 그 실상을 얻고 또 나의 외조부 송시열에게 글을 청하여 그 사실을 전하였는데, 동래부사 정석이 비석을 세워 글을 영원히 전해지도록 하고, 장차 그 사실을 그림으로 그리려 하였다. 지금 내가 옛 성의 남문 안에 빈터를 사서 사옥을 지어 조영규·노개방·문덕겸을 제사지내고, 사당 왼쪽에 익무를 지어 김희수이하 아전 송백과 백성 김상을 모두 함께 제사지냈다. 그 비석은 뜰로 옮겨 지붕을 만들어 덮었고, 비석 지붕의 좌우에 벽을 만들어 공인으로 하여금 여러 사람이 절의를 위하여 죽은 모습과 이각이 도주하는 형상을 그리게 하여 그 사이에 두었다. 성이 함락된 뒤에 왜적에게 붙지 않고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토벌한 유민 24명의 성명을 곁에 기록함으로 제공들이 권선징악한 뜻을 완수하였다. 사당으로 부족하여 비석을 세우고, 비석으로 부족하여 그림을 그려서 장차 이 천리를 함께 품부 받아 마음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려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군들 이 마음이 없겠으며,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군들 천리를 갖고 있지 않겠는가. 어찌 이 그림을 보고서 임금에게 충성하고, 윗사람을 위해 죽으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겠나, 고을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성이 처음 함락될 때에 왜적이 성의 동쪽 산을 넘어왔다고 기록하였다.


-동래부순절도(東萊府殉節圖) 그림에 대한 기록-


동래부순절도 그림 가운데에 중성(中城)에서, 하늘 높이 솟은 것은 객관(客舘)이며, 홍포(紅袍)에 오모(烏帽)를 쓰고 뜰에서 북향하여 몸을 굽히고 있는 것이,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 공이 조용히 의리를 위해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이다.


한 사람이 송상현의 뒤에 서서 죽음을 나아가려는 것이 겸인(傔人) 신여로(申汝櫓)이고, 예쁜 젊은 여인이 관아의 담을 타고 송상현 공에게 나아가다 왜적에게 잡히는 것이 시첩(侍妾) 김섬(金蟾)으로, 비록기생 이지만 또한 열녀이다.


정원루(靖遠樓)가 객관의 왼쪽에 있다. 가운데에 두 사람이 난간에 시신으로 누워 있는 것이 혁혁한 노개방(盧盖邦)과 그의 제자 문덕겸(文德謙)이다. 노공은 이 고을에 교수로 부임하여 위판을 받들어 모시고 재직하다가 직분을 위하여 죽었고, 그의 제자 문생은 스승에게 배운 바를 저버리지 않았다. 또 양조한(梁朝漢)이라는 이가 함께 죽었다고 하는데 전하는 것이 상세하지 않아 함께 열거하지 못하니, 아! 애석하도다.


용맹스러운 양산군수 조영규(趙英圭)가 충분 강개한 마음으로 달려와서 함께 죽었다. 활을 잡고 왜적을 사살하려다 왜적에게 팔이 잘렸는데, 팔이 펄떡 펄떡 살아 잇는 듯 하니 한 몸이 모두 의기라 할 것이다. 혹은 거리에서 싸우고 혹은 길에서 막으면서 힘을 다해 왜적을 죽이다가 힘이 다하여 죽는 모습이 있으니, 저 3사람은 2명의 비장과 1명의 아전으로 김희수(金希壽) · 송봉수(宋鳳壽) · 송백(宋伯)이 그들의 성명이다.


저 아름다운 장부여! 누구의 집을 걸터앉아 기와를 던져 왜적을 죽이는가. 2여인이 이를 도와 혹은 지붕을 걷어내고 혹은 기와를 집어 주네. 장부는 씩씩하고 여인은 얼마나 기특한가. 장부는 김상(金祥)인데, 여인은 누구의 아내이며 딸이든가. 이름이 인몰되어 전하지 않으니 슬프도다.


북문 밖에는 길로 달아나는 자가 있으니 허겁지겁 도망가느라 몸가짐을 잃었고 미친 듯이 내달리느라 뒤 돌아 보지도 않는다. 저 자는 평시의 경상좌병사 이각(李珏)으로서 국은(國恩)을 받아 영화를 누림이 어떠하였던가. 하루아침에 국가의 위기를 만나서는 하루의 힘도 바치려 하지 않고 머리를 감싸고 쥐처럼 숨어 잠깐의 목숨을 훔치고 있으니, 나라에 법이 있다면 진실로 잡아 죽여서 그 피를 북에 발라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도 변방 사람들은 이각의 일을 말하기를 부끄럽게 여긴다.


대개 사람들이 역사서를 읽다가 충신열사의 일에 이르면 그 사람의 뼈가 이미 썩었고 그 사건의 그림자도 없어졌으며 나와 연관된 애정과 친분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내가 그를 위하여 눈물 콧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것은 진실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함께 부여된 천리가 본래 내 마음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우리 임금을 위하여 죽고 이 성을 지키다가 죽었기에 그 강개하고 비상한 마음을 그리워함이 더욱 큼에 있어 서랴!


옛날 동래부사 윤훤(尹暄)이 사당을 지어 송상현 공을 제사를 지냈다. 동래부사 민정중(閔鼎重) · 이지익(李之翼) 공이 고향 늙은이에게 물어 그 실상을 얻고 또 나의 외조부 문정공(文正公)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선생에게 글을 청하여 그 사실을 전하였는데, 동래부사 정석(鄭晳)이 비석을 세워 그 글을 영원히 전해지도록 하고, 또 장차 그 사실을 그림으로 그리려 하였다.


지금 내가 옛 성의 남문 안에 빈터를 사서 사옥을 지어 조영규(趙英圭) · 노개방(盧盖邦) · 문덕겸(文德謙)을 제사지내고, 사당 왼쪽에 익무를 지어 김희수(金希壽)이하 아전 송백(宋伯)과 백성 김상(金祥)을 모두 함께 제사지냈다. 그 비석은 뜰로 옮겨 지붕을 만들어 덮었고, 비석 지붕의 좌우에 벽을 만들어 공인으로 하여금 여러 사람이 절의를 위하여 죽은 모습과 이각이 도주하는 형상을 그리게 하여 그 사이에 두었다. 또 성이 함락된 뒤에 왜적에게 붙지 않고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토벌한 유민 24명의 성명을 곁에 기록함으로 제공들이 권선징악한 뜻을 완수하였다.


사당으로 부족하여 또 비석을 세우고, 비석으로 부족하여 또 그림을 그려서 장차 이 천리(天理)를 함께 품부 받아 마음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려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군들 이 마음이 없겠으며, 이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군들 이 천리를 갖고 있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어찌 이 그림을 보고서 임금에게 충성하고, 윗사람을 위해 죽으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겠는가! 고을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성이 처음 함락될 때에 왜적이 성의 동쪽 산을 넘어왔다고 한다.









‘동래부순절도(東萊府殉節圖)’


 


 


 



온라인 뉴스부 기자 / 입력 : 2012년 1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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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정론직필!!
예방법없음
따뜻한 기사 잘 보았습니다. 주변에서 볼수 있지만 관심을 주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후원해 주신 에스엠디에스피 대표님과 선행을 알려주시는 경북문화신문과 김예은 학생 기자님께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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