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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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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이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선생의 화상을 보고 찬문을 지은 글이다. 그는 조선 후기의 주자학자로 도덕정치의 구현을 강조했으며, 이색적이고 독창적인 학설을 주장했다. 1576년 재사(才士)로 천거되었고, 1595년 유성룡(柳成龍)의 천거로 보은현감을 그리고 의성현령을 지냈다. 그 뒤 형조좌랑, 순천군수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고, 광해군 때 합천군수, 인조 때 사헌부 지평, 사헌부 집의, 이조참판, 사헌부 대사헌, 지중추부사 등에 20여 차례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퇴하고 학문에 전념했다.
-포은선생(圃隱先生)의 화상(畵像)을 뵙고 지은 사(詞)-
우주 사이에 오래갈 수 없는 것은 형기이니, 사람이 백년을 지나도록 몸을 보존하는 자 그 누구인가. 그 중에 없어지지 않는 것은 덕의이니, 천백 대를 지나도 교화가 사람들에게 남아 있다. 없어지지 않는 것을 생각하고, 오래갈 수 없는 것을 생각하며, 참 모습과 비슷한 것을 찾으려 하나 무엇을 근거할까. 얼마나 다행인가 선생이 돌아가신 지 2백여 년에 오늘날 선생의 모습을 배알하게 되었으니. 아! 도덕과 절의가 우리나라에 제일인 분이 아니면 사람들로 하여금, 유상을 보고 감격하며 기뻐하기를 이처럼 지극하게 할까. 하늘이 선생을 말세에 탄생한 것은, 아마도 뜻이 있어서일 것이니. 옛날 단군과 기자 이후에 일찍이 베풀어지지 못한 문교가, 선생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떨쳐 일어나게 되었고. 그 후 우리나라 만 만세에 변할 수 없는 윤리강상이, 선생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붙들어 유지되었네. 이는 간직하고 있는 도덕과 성취한 사업이 일월을 빛나게 하고, 산하를 안정시켰기 때문이네. 이것은 화려한 문장과 지엽적인 재주가 있어 유자(儒者)라 이르고, 한 세상에 공로가 있어 충신이라 이르는 자가, 만분의 일도 따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오.
지금 천지간에 서서 삼재(三才)에 참여하여, 둥근 머리와 네모진 발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들이 집안에서 부자간의 사랑을 다하고, 나라에서 군신간의 의리를 다하는 것이 그 누구의 은혜인가. 이 모두 선생의 한 몸이, 천고의 뒤와 만년의 앞에 있었던 때문이 아니겠는가? 돌아보건대 나는 남은 교화 가운데의 후학으로서, 선생의 모습 한번 뵙기를 원하다가 이제 비로소 소원을 이루게 되었네. 삼가 향불을 피우고, 배알하니 엄숙한 영령이 완연하시네. 형상할 수 있는 것에 나아가 형상할 수 없는 것을 알고, 볼 수 있는 것을 인하여 볼 수 없는 것을 안다오. 거슬러 당시를 멀리 상상하니, 구천(九泉)에서 다시 나오신 듯하네. 타고난 천품이 본래 순수하고 아름다우니, 그의 자질 과연 빼어난 풍격이었으며, 스승의 가르침 받지 않고 정밀하고 심오한 진리 터득하니, 그의 학문 그대로 덕스러운 모양 보존하였네. 횡설수설이 모두 의리에 합당하니, 근원이 어디로부터 나왔기에 이처럼 무궁하며, 좌우로 수응함에 모든 일이 다 적합하니, 기틀이 어디로부터 나왔기에 사방으로 통하는가. 10.000리 아득히 막힌 중국의 궁궐에서 황제를 감동시키니, 그 성의 신명에게 질정할 수 있고 높은 파도가 출몰하는 해 뜨는 지역에서 왜적들을 감화시키니, 그 신의 금석을 통할 수 있었네. 털끝처럼 은미하며 깊고 숨은 사이에서, 남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살피지 못하는 것을 살핀 것은 물처럼 맑고, 거울처럼 밝은 통찰력이 아니겠는가. 어려운 상황과 위태로운 즈음에서 남들이 해내지 못하는 것을 해내고, 남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감당한 것은 철석과 같은 의지력이 아니겠는가.
아! 사람이 그 누가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이고, 두터운 땅을 밟지 않겠는가마는 선생만이
홀로 천명대로 살았네. 사체와 온갖 몸 갖추고 만물에 뛰어나니, 그 누가 마음속에 떳떳한 성품과 사물의 법칙 간직하지 않았겠는가마는 선생만이 홀로 끝까지 본성대로 하였네. 몸이 생존해서는 국가에 기둥과 주춧돌이 되고, 묘당에 시귀(蓍龜)가 되고 사문에 영수가 되었으며, 몸이 죽어서는 성난 파도에 돌기둥이 되고, 백세에 사표가 되고 천지(天地) 사이에 원기가 되었다오. 이처럼 남다른 것은 일곱 자의 육신 때문이 아니니,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한 폭의 화상에서 법을 취하지 않을 수 있는가. 저 혹시라도 물을 수 없는 가운데 밝힐 수 없는 자취에 대하여, 의심하는 자들은 실로 선생의 도덕을 연구하지 않아서이네. 그렇다면 무엇으로 선생의 마음과 일을 볼 것인가, 하늘과 땅이 있고 해와 달이 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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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鄭夢周)선생의 화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