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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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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퇴우이선생진적첩(退尤二先生眞蹟帖)에 겸재(謙齊) 정선(鄭敾)이 71세 때 그린 인곡정사도(仁谷精舍圖)에 죽마고우인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이 7언 절구 제시(題詩)를 쓴 글이다. 그는 조선 후기의 시인으로,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호는 사천(槎川) 또는 백악하(白嶽下)이다. 부모를 비롯한 그의 출신배경은 알 수 없다. 백산(白山)이라는 곳에 살았다.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의 문인이며, 벼슬은 음보(蔭補)로 부사(府使)에 이르렀다. 시(詩)에 뛰어나 영조시대 최고의 시인으로 일컬어졌다. 문인 잠재(潛齋) 김익겸(金益謙)이 그의 시초(詩抄) 한권을 가지고 중국에 갔을 때 강남(江南)의 문사들이 '명나라 이후의 시는 이 시에 비교가 안 된다.' 라고 그의 시를 극찬하였다고 한다. 일생동안 무려 1만 300여수에 달하는 많은 시를 썼다고 하나, 현재 시집에 전하는 것은 500여수뿐이다. 그의 시는 대부분 산수 · 영물시로, 대개 서정이 두드러지고 깊은 감회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매화를 소재로 55수나 되는 시를 지었는데, 이는 대개 은일적인 기분을 표현한 것으로 생(生)에 대한 깊은 애정을 은연중 표현하고 있다. 중국의 자연시인 도연명(陶淵明)의 의경(意境)을 흠모하였던 것 같다. 80세가 넘도록 시작생활을 계속하였다. 저서로는 사천시초(槎川詩抄) 2책이 전하고 있다.
이 제시는 과연 시문(詩文)의 대가다운 명시이다. 이 그림은 청풍계(淸風溪)에 기거하시던 겸재 정선의 외조부 박자진(朴自振)이 사시던 외가집 풍계유택(楓溪遺宅)으로부터 이황(李滉)과 송시열(宋時烈) 두 선생의 친필묵보를 전해 받아 이 묵보를 수장하고 있는 겸재 정선이 자신의 집, 인곡정사(仁谷精舍)를 그린 그림으로 자신의 집 표현이 상세하게 되어있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집 뒤 인곡에 우거진 노송(老松)이 숲을 이루고 있어 그 풍광이 빼어남을 기록으로 남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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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큐레이터 이택용 |
-퇴우이선생진적첩(退尤二先生眞蹟帖), 인곡정사(仁谷精舍圖)의 제시(題詩)-
비취색 소나무 숲과, 세 구멍 퉁소 소리가 나는 대밭 속에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두 선생의 글은 후생들이 응당 서둘러 배울 일이요. 중국 당나라 화성인 왕유(王維)의 별장이 있는 망천(輞川)같은 곳에서, 초본을 위한 네 폭 그림은 다른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의 왕유(王維) 옹(翁) 같은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작품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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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의 인곡정사도와 사천 이병연의 제시(題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