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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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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저암(著菴) 유한준(兪漢雋)이 화원별집(畵苑別集)에 있는 그림을 보고 발문을 쓴 글이다. 그는 조선 후기의 문장가 · 서화가이다. 1768년(영조 44) 진사시에 합격한 뒤 김포군수 등을 역임하고 형조참의에 이르렀다. 남유용(南有容)의 제자로 송시열(宋時烈)을 추모하여『송자대전』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당대에 뛰어난 문장가로 손꼽혔으며 저서로『저암집』이 전해온다. 화우(畫友)들이 많았던 듯, 당시 화가들의 그림에서 제발문(題跋文)을 심심하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김광국의 많은 그림에 대한 발문을 쓰다(石農畵苑跋)
그림은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 아끼는 사람, 보는 사람, 소장하는 사람이 있다. 중국 동진(東晉) 때의 유명한 화가 고개지(顧愷之)의 그림을 부엌에 걸거나, 당나라 왕애(王涯)의 그림을 벽에다 꾸미는 것은 오직 소장한 것일 뿐인 사람이니 반드시 능히 그 그림을 볼 수가 없다. 본다 해도 어린애가 보는 것과 비슷해서, 입을 벌리고 웃지만 다시 붉고 푸른 빛깔 외에 다른 것은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능히 그 그림을 아낄 수가 없다. 설령 아낀다 해도 오직 붓과 종이의 빛깔만 가지고 취하거나, 형상과 배치만 가지고 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능히 그 그림을 알아볼 수가 없다. 그림을 알아보는 사람은 외형이나 법도 같은 것은 잠시 접어두고, 먼저 오묘한 이치와 아득한 조화 속에서 마음으로 만난다. 그런 까닭에 그림 감상의 묘는 소장하거나 바라보거나 아끼는 세 부류의 껍데기에 있지 않고, 알아봄에 있는 것이다. 알게 되면 참으로 아끼게 되고, 아끼면 참으로 볼 수 있게 되며, 보이게 되면 이를 소장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저 쌓아두는 것과는 다르다.
김광국의 자는 원빈(元賓)이며, 그림을 알아보는 데 현묘했다. 그는 형태로써가 아니라 정신으로 그림을 보았다. 천하의 좋아할 만한 물건을 통 털어 그가 아낄 것이 없었다. 그림을 아끼는 것을 돌아보고 더욱 깊어져서, 쌓인 것이 저와 같이 성하였다. 내가 그가 폭을 펼쳐 논평하는 것을 보면, 그 논의는 고아함과 속됨, 높고 낮음, 기이함과 바름, 죽음과 살음을 흑백과 같이 나누니 깊이 그림을 아는 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전부다 진실로 단지 소장하는 그림이 아니다. 비록 그러해도, 자고로 호사자가 그림을 좋아함이 많아서 그림을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그를 판단하기에 부족하다. 그는 아예 박식하고, 풍운에 깊고, 술 마시기를 좋아했다. 술에 취해 고금의 득실과, 누가 좋고 누가 그른지에 논해서 밝게 천고의 기운을 쓸어 비웠다. 어려서는 유명한 김광수(金光遂)와 이인상(李麟祥)과 놀았다. 지금 그는 흰머리가 되어 이제 옛것을 좋아하다가 시들었다. 내가 이에 처음 그와 교류해 서로 얻은 것이다. 그는 내게 그림 발문을 요구했다. 나는 그림을 아는 자가 아니다. 다만 그 일이 위와 같이 있었음을 말하고 그 사람됨을 논하여 그것을 이었고, 이로써 나를 그에게 보였고 그림으로 오로지 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바가 있다. 그는 본관이 경주(慶州)이고 호는 석농(石農)이다. 1795년(정조 19)에 유한준은 쓴다.
 | 화원별집(畵苑別集)중 황집중의 묵포도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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