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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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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선생은 1702년(숙종 18)에 당시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였다. 부임 후 제주도의 각 고을을 순회한 장면을 기록한 28폭 채색 화첩으로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를 남기었다. 조선왕조의 수령은 노인들을 초청하여 경로의 잔치를 베푸는 양로연(養老宴)을 먼저 하는 것이 중요한 직분이었다. 양로연을 베풀 때에는 귀하고 천한 것을 가리지 않고 노인들의 좋은 말을 들어 행정에 반영했다. 노인을 공경하며 어진 이를 존경하는 것은 왕조를 다스리는 근본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효령대군의 후손이다. 1677년 사마시를 거쳐 1680년 별시문과에 급제했다. 호조좌랑을 지내다가 금산군수로 부임하여 덕유산의 도적들을 토벌하고 선정을 베풀었다. 1703년 제주목사로 있을 때 석전제(釋奠祭)를 지내던 3읍의 성묘를 수리하여 덕망 높은 선비를 뽑아 글을 가르치게 했으며, 몽매한 풍속을 타파한다면서 129개의 신당을 불태우는 등 불교와 토착신앙을 배척하고 유교를 권장했다. 1727년 호조참의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경북 영천에 호연정(浩然亭)을 세워 학문에 힘쓰면서 1728년 가선대부가 되고, 소론의 일파인 이인좌(李麟佐)가 난을 일으키자 경상도 소모사가 되었으나, 같은 소론으로서 당론을 누설했다는 무고를 받고 잠시 투옥되었다. 벼슬은 한성부윤에 이르렀고, 1735년 영천의 성남서원에 제향되었으며, 1796년 청백리(淸白吏)에 뽑혔다. 1829년 에는 제주유생들이 그를 기려 영혜사(永惠祠)에 제향했다.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의 제주양로(濟州養老)에 내용을 씀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는 1702년(숙종 18)에 당시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였던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이 제주도의 각 고을을 순회한 장면을 기록한 채색 화첩으로 그는 그해 11월 19일 제주목의 동헌(東軒)앞에서 양로연(養老宴)을 실시하는 광경이다.
동헌 뜰을 중심으로 망경루望京樓), 마방(馬房), 귤림당(橘林堂), 애매헌(愛梅軒), 동헌의 모습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으며 그는 북쪽을 향하고 있으며 제주목의 80세 이상 183인, 90세 이상 23인, 100세 이상 3인의 남녀 노인은 남쪽을 향하고 있다. 정의현감, 전 대정현감 문영후(文榮後), 전 찰방 정희량(鄭希良), 군관 15인원, 삼학(三學) 등이 참여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이들은 이형상목사의 오른쪽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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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순력도의 일부분 제주양로도(濟州養老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