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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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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과 겸재(謙齋) 정선(鄭歚)은 죽마고우이다. 겸재가 1740년(영조 16) 65세 되던 해에 경기도 양천현령(陽川縣令)에 부임하였다. 겸재의 정치적 후원 그룹인 노론 대신들의 지원에다 그의 진경산수를 좋아했던 영조임금의 특별한 배려로 서울근교의 아름다운 경치를 화폭에 담을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림에서 겸재, 시(詩)에서 사천'으로 불릴 만큼 겸재와 더불어 쌍벽(雙璧)을 이루던 평생지기 친구 사천과 떨어져 있는 동안 시와 그림을 주고받기로 약속했다. 즉, 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을 약속했다.
겸재가 그림을 그려 보내면 사천이 그에 맞는 시를 전하고 사천이 시를 지어 보내면 겸재가 그 시제(詩題)에 맞는 그림을 그려 보내 주었다. 친구와 시와 그림으로 교류하며 33점의 한강주변의 경치를 화폭에 담아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으로 남겼다. 그 중에 공암층탑(孔岩層塔)이란 화폭에 사천이 남긴 화제를 아래와 같이 풀이하였다.
▶겸재(謙齋)의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중 공암층탑(孔岩層塔)에 화제를 씀
겸재(謙齋)가 공암층탑을 그리고 사천(槎川)이 화제를 썼다.
孔岩多古意, 一塔了洪蒙, 下有滄浪水, 漁歌暮影中. 孔岩層塔
공암(孔岩)에 옛 뜻 많으나, 탑(塔)하나만 아득하구나. 아래에는 창랑(滄浪)의 물 있는데, 어부의 노래는 저녁 그림자의 속에 있구나? 공암층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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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겸재(謙齋) 경교명승첩의 공암층탑(孔岩層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