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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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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의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에 담김 뜻은 벼슬하지 않고 사는 선비의 즐거움이다. 맨발 차림의 선비가 여유롭고 평안한 표정으로 당나라 악기인 비파를 연주하고 있다. 방안에는 여러 가지 물건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 향로, 도자기, 붓과 먹이 있고 비파를 연주하는 선비의 모습이 여유롭기만 하다. 청빈한 선비의 즐거움이 담겨있다. 예전에는 청빈이 선비의 덕목이자 긍지로 여겼다. 공자의 말씀에도 자주 선비의 청빈에 대해 언급된다. 공자는 선비는 모름지기 유어예(遊於禮) 즉 예를 즐겨야 한다고 했다. 비록 가난해서 소박한 밥과 소박한 집에서 살아도 예를 지키며 마음만은 넉넉하게 지내는 것이 선비의 도라고 강조했다. 그의 이 그림에도 청빈한 삶을 즐기는 선비의 풍류가 잘 나타나 있다.
그림에 나뭇잎이 보이는데 파초 잎이다. 예전에는 많은 선비들이 종이가 귀해 파초 잎을 이용해 글씨를 썼다. 파초 잎에 글을 쓰고 물에 씻으면 지워지고 그 위에 또 글을 쓰곤 했다. 그러한 청빈한 삶 속에서도 시를 쓰고 악기를 연주하며 누추한 골방에서도 즐거운 삶을 살아갔던 것이 옛 선비들의 모습이다. 방안에는 또 긴 칼이 보이는데 선비들도 예전에 칼을 소지했는데 나쁜 것을 물리친다는 상징적인 의미이다. 그는 화원으로 중인 계급이다. 그러나 학문에 대한 열의가 많아 많은 서책들을 섭렵해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런 지식들이 그의 작품에 녹아있는 경우가 많다. 사진 속 인물처럼 악기를 연주하며 음악도 즐겼다. 그가 연풍현감으로 나간 것은 정조의 어진(御眞)을 제작한 공으로 받은 벼슬이었다.
그러나 그는 풍류의 화가였지 행정력을 갖춘 인물은 아니었다. 그래서 임기 말년에 연풍의 행정이 해괴하다는 보고가 있어 충청도관찰사의 감사를 받고 끝내는 파직되고 말았다. 그때의 일을 일성록(日省錄)에는 단원은 천한 재주로 현감까지 되었으면 더욱 열심히 일했어야 했는데 동네 과부 중매나 일삼고 토끼사냥을 간다고 병력을 동원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만이 파직 이유라면 단원으로선 좀 억울한 면도 있어 보이지만 이로 인해 그가 모처럼 자유인이 되어 '포의풍류도'에는 이 무렵 단원의 심정이 담긴 자화상적 이미지가 들어 있다. ▶단원(檀園)이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를 그리고 화제를 씀
綺窓土壁, 終身布衣, 嘯咏其中. 檀園.
흙벽에 아름다운 창을 내고 이 몸 다할 때까지 벼슬 없이 시가(詩歌)나 읊조리련다. 단원 김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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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원 김홍도의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