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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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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CA에서 평생을 보내면서 청소년의 일로 세월을 보내면서, 또 이번 학기 대학교에서 청소년 복지를 강의하면서 공부하고 느낀 생각 중에 하나는 '대한민국의 청소년은 홀대받고 있다'였습니다.
구체적인 관심(정치, 행정, 복지 등)에서 멀어지고, 부모의 보호라는 이름으로 청소년기를 인간의 삶 즉 발달과정 중 주요한 한 시기가 아니라 단순히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통과기간으로 인식하는 기성인들에 의해 모든 면에서 그들의 목소리도, 숨소리도 나아가 발소리도 죽일 수밖에 없도록 하여 결국 갇혀진, 보호종 가운데 최상으로 인식되는 지경 이른 것은 아닐지 싶어 답답하기까지 했습니다.
비록 논리적인 비약이 있지만 청소년들의 성장에 대한 몰인식과 가정의 성장요소는 학교생활과도 바로 연결되어 나타나게 되고, 동시에 성인이 판단하는 바람직한 모습의 청소년으로 , 또 성인들에 의한 요인들(환경, 생각차이, 성격등) 때문에 ‘왕따’라는 돌연변이 괴물을 만들어지고 급기야 생명을 죽음에 몰아넣는 안타까움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오쿠다 히데오는 ‘침묵의 거리에서’(沈黙の 町で 최고은 역. 2014, 민음사)라는 소설을 통해서 그대로 보여줍니다.
부잣집 외동아들, 약한 몸매, 말더듬이, 등 왕따의 조건이 확실(?)한 나구라,
그들 죽음으로 몰아넣었지만 어른들의 가르침(?)에 의해 끝내 거짓말로 도피하려는 운동 동아리 친구 4명과 선후배, 같은 반의 학생들,
그들을 그런 모습으로 이끌어 낸 그들의 가족과 이웃.....
한 어린 중학생의 죽음에는 ‘왕따’라는 굴레는 씌여지고 그 이웃과 동료는 살인자라는 굴레를 벗기 위해 거짓말과 변호사, 돈, 직위 등이 얽히면서 동네를 파멸로 이끌어가는 모습을 잔잔히 엮어가고 있습니다.
왕따의 문제가 학생간의 문제에서 학교의 문제로 나아가 교육정책이나 방식의 교육이라는 울타리에서 독버섯처럼 마구 갈아먹더니 급기야 지역사회, 나아가 인간의 공동체적인 삶에도 그 악마의 혀를 날름거리는 모습을 작가는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서 청소년의 문제, 청소년의 복지 차원이거나 학교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중요한 사회문제로 왕따는 주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한 달이 지납니다.
우리가 보는 모습으로는 새로운 학생간의 관계 즉 다이내믹이 형성되거나 조작되어가는 시기입니다. 다른 말로 왕따 대상을 주목하거나 왕따를 만드는 작용이 소질(?)로 나타나는 시기이고 왕따를 당한 적이 있었던 경험들이 다른 사람을 왕따 시키는 일에 나서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학교생활에서부터 비롯된 작은 일들(당하는 사람에게 평생을 남기는 상처의 흔적이지만)이 부모의 이야기와의 단절에서, 부모의 아집에 따른 관심이라는 ‘성장하면 으레 그런 것’이라는 이름으로 가려지고, 변명처럼 방관하는 것에서 시작되어 급기야 사회 공동체에 까지 파괴를 보여주는 핵폭발과 같은 암의 덩어리를 사랑이라는 현미경을 찾아내고 관심이라는 처방전으로 치료해가며 놀이라는 약으로 매워주는 사회의 모습이 있어야 비로소 청소년의 건강이란 바로 이루어지는 것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같은 마음으로 청소년을 보아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청소년들 특히 중학교 재학생의 자녀를 두었거나 그 또래의 자식을 가진 모든 부모님께 꼭 권하고 싶은 작은 소설이다.
(2014.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