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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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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의『매하쌍치도(梅下雙雉圖)』란 그림이다. 조선 후기 대표적인 직업 화가로 붓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고 호생관(毫生館)이란 호(號)를 썼다. 술을 좋아하고, 금강산의 구룡연(九龍淵)에 갑자기 뛰어들었다는 등의 기이한 행적으로 인해 '조선의 반 고흐'로 불리기까지 하는 그의 일생에 대해서는 전하는 기록이 거의 없다. 다만, 그의 그림을 높이 평가했던 문인들의 문집 속에 조금씩 기록이 남아있을 뿐이다. 기이한 행동을 일삼은 광기 어린 화가로 알려진 그는 그림을 매우 잘 그려 쏟아지는 주문에 시달렸고 말년에 매우 가난하게 생활했다고도 전한다. 30대 중반의 나이였던 1748년(영조 24), 일본에 통신사 수행화원으로 파견되었을 때 일본인들이 그의 그림을 얻고자 몰려들었다던 기록도 있다. 그때 호를 거기재(居其齋)라 쓰여 있는 그림 대부분이 그 때 그린 것이다.
그가 그림에 남다른 소질이 있을 뿐 아니라, 스스로 시와 글, 그림에 능하다는 의미로 별호를 삼기재(三奇齋)라 한 것도 주목된다. 영의정을 지냈고 당시 제일의 문장가로 시와 글씨에 뛰어난 남공철(南公轍)은 그의 그림이 날로 유명해져 사람들이 그를 '최산수(崔山水)'라고 불렀으나, 화훼 · 영모 · 괴석 · 고목을 더욱 잘 그렸고, 초서에도 능하였던 필묵가라 하였다. 그림에 호를 호생관 · 기거재 · 삼기재로 사용하고, 자는 칠칠(七七)로 기록한 것은 모두 그를 지칭한다. 그의 그림 1점을 내어놓으라는 어떤 권세 있는 사람의 협박에 분노해 '남이 나를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눈이 나를 저버리는구나.' 라고 외치고는 자기가 자기 눈 하나를 찔러 실명케 한 분노와 광기의 화가였다.
이 그림의 꿩은 선비의 절개와 청렴을 상징하여 애호되던 주제였고, 이 그림에서처럼 장끼와 까투리가 함께 등장하는 소재 역시 길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화면 우측 상단에 화제를 적어 두어서 가까운 벗에게 선물한 그림임을 알 수 있다. 제작연대가 남아있는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다. 갖가지 화려한 매화 아래 수컷 장끼는 꼬리 깃털이 유려하게 위로 뻗어 올라 있어 시선을 끈다.
▶최북(崔北)의『매하쌍치도(梅下雙雉圖)』에 화제를 씀
歲辛未梧月, 三奇齋, 七七寫, 贈金友□□, 次贈李友而貫. 1751년(영조 27) 음력 7월에 호는 삼기재(三奇齋) 자는 칠칠(七七) 최북(崔北)이 그린 그림을 김씨와 이씨 성을 가진 친구들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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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생관 최북의『매하쌍치도(梅下雙雉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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