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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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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추담(秋潭) 오달제(吳達濟)의 묵매도(墨梅圖)란 그림이다. 그는 병자호란 때 청과의 화의(和議)를 끝까지 반대하여, 결국 오랑캐에게 잡혀가 갖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굴복하지 않고, 윤집(尹集) ‧ 홍익한(洪翼漢)과 함께 무참한 죽음을 당한 세칭 삼학사(三學士)중 한 사람으로, 충절(忠節)을 드높인 선비이다. 이 그림의 좌측 상부에 장문(長文)의 발(跋)이 있는데, 이는 그의 충렬을 기린 영조의 어제시(御製詩)이다.
묵매도는 약간 진한 담묵에 몰골(沒骨)로 그려서 기교를 나타내지 않았으나, 능숙한 필력으로 활달하게 죽죽 그어나간 기백이 역력하다. 늙은 매화 등걸이 오른쪽 하단에서 좌측 상단 쪽으로 굽어 뻗고, 거기서 다시 큰 가지 등걸이 우측 상단 쪽으로 뻗어, 이 두 등걸이 근간을 이루고, 밑 등걸에서 세 가지가 위로 뻗었는데, 가지 등걸을 거쳐 솟아 있다. 매화꽃은 세 가지 중 잔가지가 좌우로 솟은 거의 화면 중심에 있는 가지의 사이사이와 새순 끝에 점점이 피었는데, 다른 가지에는 눈만 붙어 있다. 이러한 표현은 이 시대 양식에 따른 것이지만, 이 그림에 보이는 서리 발 같은 기백은 가히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이 숭엄해지게 한다. 화면 가득히 한 그루의 매화가 나타나고 있다.
▶영조대왕의 어제시(御題詩)를 현손인 오언유(吳彦儒)가 받아서 적음
충렬공(忠烈公) 오달제(吳達濟)의 매화족자에 어제(御題)를 이어서 짓고, 그의 후손인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 오언유(吳彦儒)에게 주다. 오늘 바라보면서 인사를 올리니, 아득히 지난시대의 일이 생각난다. 중국 땅을 바라보니, 더욱 더 처절하고 슬픈 생각만 나니, 오늘 이때에 충렬공이 남긴 매화족자를 볼 수 있음은 다행이 아닌가. 동쪽 건물에 있는 매화 그림은 충렬공의 필적이다.
윗부분에 있는 숙종대왕의 어제는, 충렬공을 추모하고 안타가워 하였다. 오랫동안 공을 추모하는 시(詩)가 중단되어 삼가이어서 이시를 짓는다. 어느 때에 충성심을 세웠는가. 한남(漢南)에 저녁구름 일 때이다. 어떻게 나의 마음을 나타낼까. 특별히 그의 후손에게 준다.
1756년(영조 32) 11월에 충렬공 오달제의 현손(玄孫)인 성균관 대사성 신하 오언유가 하교를 받아서 삼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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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담 오달제의 묵매도(墨梅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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