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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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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습니다. 해를 넘겨 인사니, 덕담을 나눈 것도 벌써 60번이 훨씬 넘습니다. 그만큼 많은 이런 저런 결심과 다짐, 그리고 외쳤습니다. 희망이라는 말이 반드시 앞서있고 그기에 따르는 기대와 소원, 각오가 정형이었습니다만 2015년을 맞는 모습이 참 다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시사IN은 ‘2015, 뭐라도 합시다’라는 주제로 ‘2014년의 절망과 아픔, 변화 없는 정치와 노동문제에 대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파하고 싶다’ 했고 경향신문은 ‘저성장, 가지않는 길....위기만은 아니다’라고 하는데 반해 대통령은 광복 70년, 분단 70년이라면서 ‘꿈과 희망이 결실을 맺는 해’라고 합니다.
아무리 보아도 꿈과 희망의 결실이라는 말이 허무하게 들립니다. 하여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이리 말 꼬리를 돌립니다. 그 하나가 <조난을 당하여 간신히 발견한 조그마한 판자를 붙잡고 있으면 물에 빠지지 않고 조난을 기다릴 수 있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판자를 붙잡으려 했을 경우 상대방을 밀어버리고 혼자서 구조를 받으려하는 것은 죄가 되는지> 처럼 ‘카르테아네스의 배’ 상황이라는 말로 잘못을 얼버무리는 일은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죽음으로 밀어 넣는 행위는 어떤 상황에서도 ‘살인행위’인데......그러나 자신의 이익이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정당방위라는 이름으로, 현실이라는 면죄부로 핑계하는 일은 이제는 그만 멈추어져야 할 것입니다.
지난해, 그 지난해 무슨 이유인지, 그 숱한 사람들이 조사니, 수사니 하고도 지금도 알 수 없는 300이 훨씬 넘는 꽃들을 수장한 이유, ‘국가안보를 위해’라는 이름으로 내 목숨도 남에게 맡기고, 도둑질에도 눈감고, 선거개입 한 일, 21세기 대한민국은 후한말의 이야기가 선도하는 듯 한 국정농단들, 아이들의 밥그릇을, 젖병을 깨트릴 정도로 빈약한 재정운운하면서도 전 세계에 자원외교라며 물 붙듯 버린 돈들.....
그러나 무엇보다 나라의 안녕을 책임진 사람이 차가운 물속에서 있는 자신이 돌보아야 할 죽어간 꽃들에게도 이런 비유를 내세워 문제를 해결하려는 듯 한 모습은 제발 2015년에는 반드시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암만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습니다. <목동 기게스는 양을 치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커다란 지진이 일어나 땅이 갈라지고 동굴이 생기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는 갈라진 동굴 속으로 들어가 금반지를 끼고 있는 거인의 시체의 반지를 빼들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자신이 끼고 있는 반지의 흠집 난 곳을 안으로 돌리면 자신은 투명인간이 되고 밖으로 돌리면 자신의 모습이 다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보이지 않게 하는 힘'을 갖게 된 기게스는 궁전에 들어가 반지를 이용하여 왕비를 간통하고, 왕을 암살, 왕위를 찬탈하고 스스로 리디아의 왕이 된다>는 이야기를 플라톤의 ‘국가’에서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자격 없는 자에 대한 무한의 권력이 주는 문제’를 지적합니다.
지난해 ‘종복’이라는 반지를 가진 세력(절대 권력을 가져서는 안 될 사람들)의 종횡무진, 최소한의 정도 무시, 민주주의의 원칙자체 폐기하는 모습을 아픈 마음으로 쳐다보아야 했습니다. 종북이라는 반지의 빛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정당을 해산하고, 하늘을 향한 굴뚝의 끝에서 목이 터져라 외치는 사람을 ‘경제를 좀먹는 악질’로 문제를 수습하기 힘이 들 때면, 아니 조금만이라도 곤혹스러워지면 틀림없이 ‘종북’이라는 반지를 돌려 ’만약 그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를 책임질 필요가 없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플라톤)에 분명한 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골룸은 그 반지 때문에 그 반지의 종이 되어 마음마저 침식당한다는 사실을 금년에는 꼭 기억하는 반지가진 사람 되시길 빕니다.
정말 이건 아닙니다. 해방이후에 한 해로 거르지 않고 대통령도, 정책 책임자는 한결같이 발전, 성장을 신년 화두로 삼고 성장률이니 GDPI니하며 수치에 열을 올리는 모습입니다.
<소크라테스와 아버지를 고소한 자신의 아버지를 고소한 신관 에우티프론의 대화입니다. 고소한 이유를 ‘아버지가 잘못한 노예를 심하게 두들겨 패고 마른 길바닥에 방치해서 죽였으므로 살인죄를 저질렀기에 경건한 일이 뭔지 아는 자신은 경건한 일을 했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경건함" 이란 ‘신에게 사랑받기 때문에 경건한 것’인지, 아니면 ‘경건하기 때문에 신에게 사랑받는 것’인지를 묻는 질문으로 경건함의 본성에 이르는 대화가 연결됩니다. 하여 ‘경건함이란 무엇이 신에게 적절한지에 대한 앎(episteme)’이고 이는 ‘신이 맘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경건함이니 결국 에우티프론의 초기 정의(경건하기 때문에 신에게 사랑받는다)와 모순된다고 지적합니다.>(플라톤, 대화)
이 말을 ‘잘살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이니 발전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성장, 발전을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를 물어야 할 것이고 ‘잘 살기’라는 말을 앎(episteme)이 바로 핵심이라고 연결할 수 있습니다 .
수치로는 30-50클럽(3만 불 소득, 5천만 인구)에 가입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아직까지 우리의 화두가 분배가 아닌 성장’이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지난해를 이어 끊이지 않는 피케티의 열풍 뿐 아닙니다. 질베르 리스크는 ‘경제학은 과학적일 것이라는 환상’ ‘발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이라는 책을 통하여 사람들의 삶이란 절대 경제발전이, 경제성장에서가 아니고 적절한 분배와 소득의 균형이라고 몇 년 전부터 외치고 있지 않습니까?
2015년 고성장이 아닌 저성장으로, 분배가 핵심이 되는 ‘선진국 대한민국’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