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용자와 피사용자를 일컫는 甲과 乙의 관계가 자주 화두에 오르내린다.
갑과 을은 상호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 화합하고 조화를 이룰 때 개인간은 물론 기업과 사회가 상호 윈윈하며 함께 발전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 바로 대등하고 원만한 갑을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갑을 관계가 원만하지 못할 때 개인간의 관계는 파괴되고, 또한 사회는 분열과 충돌이라는 불협화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이같은 불안한 관계는 역사적으로는 조선조부터 이어져 내려왔다. 반상(班常)관계가 그렇고, 귀족과 천민, 머슴살이와 주인간의 신분제등 불평등한 관계가 그렇다.
이후, 흐르는 세월과 함께 사회의 변천과 함께 인간평등 시대가 개막됐다. 법과 제도적으로는 신분제도가 철폐되는 등 대등한 갑을 관계로 진전돼 왔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는 이러한 잔제 의식이 남아 불안한 갑을 관계를 조성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봉건사회의 고루한 신분제도의 폐습에 의한 잔제의식의 소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몇가지 실례를 들어보자.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항공기 불법회항 사건과 재벌 2,3세의 탈법, 불법등 횡포가 그 예 중의 하나이다.
또 대한항공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 재단 이사장으로 있을 당시인 2012년에는 인하대학교 학부형들의 시위가 있었다. 이 때 학생 도서관 출입을 했다가 학생들로부터 항의를 받자, 조 회장은 “학생이 주인이 아니다. 이 학교의 주인은 나다. 여기는 사립학교이고, 소유자는 바로 나다”라는 발언을 했다. 이 때문에 여론으로부터 몰지각한 재벌의 행태라는 집중 포화를 받아야 했다.
이 뿐이 아니다. 어느 모녀가 주차장 안에서 아르바이트 생의 무릎을 꿇게 하고, 뺨을 때렸다든지, 입주자의 폭언을 견디다 못한 아파트 관리인이 자살을 선택한 사건도 주목해야 할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대등하고 원만치 못한 우리 사회 단상의 일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자화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일상생활이나 제도이든지 간에 갑을 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성숙한 관계를 유지 하기 위해서는 서로 인격을 존중하고, 대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윈윈해야 한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 자만하거나 우월적 권위의식을 통해 상대를 비하하거나 불신한다면 언젠가는 공멸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세상 모든 일에 영원이라는 것은 없다. 부와 권위 역시 특정인의 영원한 전유물이 될수 없다. 그래서 예부터 화무백일홍(花無百日紅)하고,만원(滿月)이면 편원(片月)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인격이 존중되는 민주사회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봉건사회의 유산인 종속적인 귀족과 천민관계와 재벌 2,3세의 갑질 행태가 배격되어야 한다. 물론 부와 권위를 무조건 지탄하는 대상으로 전락시켜서는 안된다. 부와 권위도 인정하는 건전한 관계 속에서 갑과 을은 서로 인격을 존중하고 동시에 대등한 관계 속에서 공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갈수록 우리 사회가 양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실로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양극화 현상이 곧 불건전하고 불편한 갑을 관계로 확산되어서는 안된다.
대도시와 지방, 도시와 농촌,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배운자와 못 배운자, 일류와 삼류등 양극화의 심화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풀어나가야 하는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의 화합과 국가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갑과 을이 각기 제자리에서 자기 성찰과 냉철한 판단으로 사회와 주변정세를 살펴보아야 한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남북관계의 현실, 주변 열강들의 틈바구니 속에 살면서 불안한 갑을 관계와 양극화가 지속된다면 이로인해 파생되는 분열상은 엄청난 재앙을 초래할 수 밖에 없다.
청양의 해, 양처럼 순한 백성, 평탄한 한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부와 권력은 영원한 소유물이 될 수 없다. 누구든 갑이 될 수 있고, 을이 될 수도 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관조의 자세, 이를 실천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 근본 가치관 속에서 인간존중, 인격존중의 미학이 깔려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