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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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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간산이지요, 차를 타고 흘낏 이태리의 일부지역을 둘러보았습니다.
하룻밤을 넘는 시간을 비행기 안에서 보낸 경험이 몇 번 됩니다. 호주로 형제YMCA 채결을 위해, 독일 등으로 생활폐기물 처리시설 관련으로, 또 미국에, 터키를....... 그때 마다 느끼는 지리함(지루함을 훨씬 넘는)으로, 또 어쩔 수 없거나, 꼭 필요하지만 낭비라며, 잘못된 판단이라며 자책을 하면서도 길을 재촉했습니다만 이번처럼 아까운 돈을 내고 여행사가 주관하는 길을 떠난 것은 몇 번 되지 않습니다.
자정을 넘겨 비행기에 올랐으나 잠이 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깨어있는 것도 아닌 모호함에 하룻밤을 꼬박 지새웁니다. 이리저리 틀려지는 몸이며 답답한 가슴, 팔 다리 조차 쭉 펴기 힘든 상자 속 같은 공간에서 10시간을 갔다가, 공항 대기실에서 네 시간을 대기하고는 다시 비행기에 올라 다시 다섯 시간을...... 거르니까 하루를 꼬박 비행기에서 또는 공항에서 보냇습니다. 기내식으로 세끼를 때우면서요
고생을 큰돈을 들여 하는 것이라......... 우스운 일이지요.
그러나 이런 피곤함 보다 더 큰 설램과 흥분이 60을 훨씬 넘긴 육체의 아픔을 이기게 합니다. 낯선 세계라지만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아가고 웃고 떠들며 또 죽어가는 것일진대 무엇이 그리 신비스러우며 놀라울 것도 아닌데 이리 호들갑을 떨며 큰 자랑이나 되는 듯 웃는 내 모습이 그리 마뜩치만은 않습니다만 동쪽과 서쪽. 2,000년 전 살아왔던 모습을 지금에서 본다는 것은 금전적인 손실을 충분히 덮을 만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원전부터 살아 움직이는 삶의 흔적을 그리고 수백 년 서양의 문물을 이끌어왔던 곳으로 갑니다. 책에서 그리게 많이 보았던 영웅이, 천재들이, 그리고 사상가들이 살았던 곳, 뛰놀며 숨 쉬었던 곳으로 갑니다. 버켓리스트 한 줄을 지워냅니다. 죽은 도시를 찾아가면서 살아있음을 만끽하면서요.
비행기의 창에서 보이는 흑해의 모습은 검은 색이 아니었습니다. 밝은 햇살과 어울린 파란 물결이 조화의 끝을 보여줍니다. 밀라노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2시가 좀 넘었습니다(우리나라와 8시간의 시차가 있으니 집에서라면 얕은 잠으로 연신 하품으로 새벽신문을 읽을 시간입니다). 환영 인사 치고는 좀 과한 느낌입니다. 찬 겨울 날씨와 바람, 습한 기운에 눈과 섞여 떨어지는 차가운 비, 지중해 위쪽의 심술궂은 날씨부터 알아라고 하는 듯 합니다.
고딕 양식의 최고봉이라는 밀라노 두오모 성당(지역마다 두오모 성당이 있습니다. 고유명사가 아니라 가장 중심이 되는 큰 성당이라는 뜻이 되겠지요)은 대리석의 차가움과 하늘을 온통 찔러버릴 듯 한 강함, 100m가 훨씬 넘는 길이, 50m가 넘는 넓이는 그 웅장함은 사람을 압도하기에는 충분하였습니다. 신의 현존하심을 이리 표현한 것은 단순한 신앙이전에 신에 대한 두려움, 다가서기에 너무 먼 모습을 보여 주려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이렇게나마 근엄함을 표시하지 않고는 더 이상 신에의 복종(사실상 종교지도자들에게, 동시에 정치권력에게)을 강요할 수 없어서 만들어진 가진 자의 추악한 횡포, 또는 욕심의 극이라 보여집니다(그러나 그 덕에 밀라노라는 시, 이탈리아라는 나라가 지금 먹고삽니다만).
여행을 안내해 주시는 분이 소매치기 조심하라는 말을 오늘만 해도 벌써 열 번 이상 듣습니다. 또 화장실을 그냥 쓸 수 없으니 최소 한잔의 차라도 마시고 이용하랍니다. 관광객으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관광객에 대한 갑 질이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 관광이 창조경제의 중심과제의 하나라는 우리 정부의 모습이 묘하게 겹칩니다. 관광객을 왕으로 모시라고, 그들이 돈을 많이 쓸수 있도록 모든 편이는 제공하라는 우리 정책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그러면서 관광대국은 젊잖게 한 수 가르쳐 줍니다. 관광산업은 관광객을 불러오기 위한 발버둥이 아니라 관광객이 불편해도 찾을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라고요. 인프라 확충도 중요하고 관광객을 위한 서비스도 중요할 수 있습니다만 여기를 찾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무엇이 제일 먼저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