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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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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추사 김정희가 윤정현(尹定鉉)의 아호『침계(梣溪)』를 쓴 글씨이다. 윤정현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며, 삼학사의 한 사람인 윤집(尹集)의 후손이며, 의정부 이조판서를 지낸 윤행임(尹行恁)의 아들이다. 1843년 식년시 문과(式年試文科)에 급제하였다. 51세의 나이로 늦게 출사하였으나 이듬해 규장각 대교(奎章閣待敎)에 뽑혀 들어간 뒤 학문과 문장의 조예와 가문적배경으로 인하여 급속히 승진하였다.
과거급제 후 6년 만에 판서(判書)에 올랐으며, 이후 이조, 예조, 형조판서를 두루 거쳤다. 판서가 된 뒤 줄곧 비변사당상관을 겸임하였는데, 특히 호남구관당상(湖南句官堂上)을 오래 지냈다. 1858년 이후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 등의 명예직에 임명되었다가 82세의 나이로 졸하였다. 효성과 우애가 돈독하여 그 덕망이 널리 알려졌고, 경사(經史)에 박식하고 문장으로 명성이 높았다. 특히 비문에 능하였으며, 김정희의 제자이었다.
▶김정희가 제자 윤정현의 아호『침계(梣溪)』를 씀
梣溪 以此二字轉承疋囑, 欲以隸寫, 而漢碑無第一字, 不敢妄作, 在心不忘者, 今已三十年矣, 近頗多讀北朝金石, 皆以楷隸合體書之, 隋唐來陳思王, 孟法師諸碑, 又其尤者, 仍仿其意, 寫就, 今可以報命, 而快酬夙志也. 阮堂幷書. 침계(梣溪) 이 두 글자를 사람을 통해 부탁받고 예서(隸書)로 쓰고자 했으나, 한비(漢碑)에 첫 째 글자가 없어서 감히 함부로 쓰지 못해 마음속에 두고 잊지 못한 것이 지금 이미 30년이 되었다. 요즈음 북조(北朝) 금석문을 꽤 많이 읽었는데, 모두 해서(楷書)와 예서의 합체로 쓰여 있다. 수당(隋唐) 이래의 진사왕(陳思王)이나 맹법사비(孟法師碑)와 같은 여러 비석들은 또한 그것이 더욱 뛰어난 것이다. 그대로 그 필의(筆意)를 모방하여 썼으니, 이제야 부탁을 들어 쾌히 오래 묵혔던 뜻을 갚을 수가 있게 되었다. 완당 김정희 짓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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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의 글씨『침계(梣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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