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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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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이 회갑연(回甲宴)에 즉흥적으로 쓴 시이다. 그는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으며, 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운동에 가담했다가 피신하지 못하고, 조선총독부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3년형을 받았다. 출옥 후에는 언론에 칼럼을 발표하는 한편, 민립대학설립운동과 물산장려운동 등의 민족운동에도 참여했다. 이 기간 중 그는 김성수, 조만식, 안재홍, 이광수, 방응모 등을 만나 인맥을 쌓기도 했다. 1924년 조선불교청년회장에 취임했고, 1927년 신간회결성에 적극 참여해 중앙집행위원과 경성지회장에 피선되어 활동했으며, 1931년 잡지 불교(佛敎)를 인수하여 사장으로 취임했다.
1936년 신채호의 시신이 비밀리에 입국한 것을 접하고 방응모와 함께 신채호의 묘비건립과 정약용서세100년 기념회 개최에 참여했다. 만년에는 방응모, 정인보, 안재홍, 홍명희, 김성수, 만공 등과 교류하며 그들이 보내주는 생활비로 어렵게 생활하였다. 일제의 극심한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비타협적인 독립사상을 견지하다가,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기 싫다며 북향으로 지은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서 중풍으로 66세의 나이로 졸하였다. 그는 1939년 7월 12일 회갑 날에 회갑연을 하면서 즉흥적으로 아래와 같이 시를 지었다.
▶한용운이 회갑연에 즉흥으로 시를 씀
怱怱六十一年光, 云是人間小劫桑, 歲月縱令白髮短, 風霜無奈丹心長, 聽貧己覺換凡骨, 任病誰知得妙方, 流水餘生君莫問, 蟬聲萬樹趂斜陽. 韓龍雲. 바쁘게 지나간 61세, 사람들은 짧은 생애라고 말하지요. 세월은 비록 흰 머리를 짧게 했지만, 풍상도 이 붉은 마음은 어쩌지 못해. 가난을 받아들이니 범골이 바뀐 듯, 병을 버려두니 묘방을 누가 알리. 유수같은 남은 생을 그대여 묻지 마오, 뭇 나무에 매미소리 지는 해를 따르리라. 한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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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의 회갑연시(回甲宴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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