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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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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김홍도(金弘道)의『관산탁족도(觀山濯足圖)』란 그림이다. 그는 당대의 감식가이며 문인화가인 강세황(姜世晃)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圖畫署畫員)이 되었다. 1781년에 정조의 어진 익선관본(翼善冠本)을 그릴 때 한종유(韓宗裕) ‧ 신한평(申漢枰) 등과 함께 동참화사(同參畫師)로 활약하였으며, 경상도 안기찰방(安奇察訪)을 제수받았다. 1791년 정조의 어진 원유관본(遠遊冠本)을 그릴 때도 참여하였다. 그 공으로 충청도 연풍현감에 임명되어 1795년까지 봉직하였다. 현감퇴임 후 만년에는 병고와 가난이 겹친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여생을 마쳤다
이 그림은 바위 낭떠러지에 나무가 무성하고 위태로운 판석교(板石橋)가 놓인 깊은 산중의 폭포 위에서 한 고사(高士)가 해 지는 줄도 모르고 구학(邱壑)에 탐닉한 채 한없이 앉아 있다. 하얗게 부서지며 쏟아지는 폭포 물에 마음과 몸을 씻어 더 이상의 진속기(塵俗氣)가 없고자 함일 것이다. 자연을 벗 삼으며 탈속하게 살고자 했던 문사(文士)의 한 전형적 생활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매우 신속한 필치로 몇 숨에 끝낸 듯 묘사가 소략(疏略)하고 필선도 조방(粗放)하다. 채색도 그저 몇 번의 성근 붓질로 분위기만 잡는 것으로 그쳤다. 화제로 시구를 유려한 행서로 써넣어 구성상으로나 내용상으로나 알맞은 배합을 이루었다. 즉 산을 바라보며 발을 씻다. 라는 주제의 그림이다. 그가 만년에 자주 사용한 단구(丹邱)의 호를 쓰고, 사능(士能)의 작은 주문인(朱文印)과 일권석산방(一卷石山房)의 세장한 백문(白文) 유인(遊印)을 찍었다. 중앙에 접혔던 자국이 있어 본래는 화첩에 있던 그림임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족자로 표구되어 있다.
▶김홍도(金弘道)의『관산탁족도(觀山濯足圖)』에 시구(詩句)를 씀
生茂樹而終日, 濯淸泉而自潔. 丹邱. 짙은 나무 밑에 앉아 해가 지고, 맑은 샘물에 씻어 스스로 깨끗하네. 김홍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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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의『관산탁족도(觀山濯足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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