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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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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눌인(訥人) 조광진(曺匡振)이『강산여화(江山如畵)』를 쓴 글에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발문을 써준 글이다. 조광진은 당시 평양에서 글씨로 이름을 날렸으나, 김정희를 만나면서 그 글씨의 품격이 크게 달라졌다고 한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말을 더듬어, 스스로 눌인(訥人)이라고 호를 삼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광사(李匡師)의 글씨첩을 가지고 배우다가 나중에는 중국의 안진경(顔眞卿)의 글씨를 배웠는지? 김정희를 만날 즈음인 이때에는 안진경의 서체를 터득하여, 평양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리었다. 그러다가 김정희를 만난 후에는 김정희의 충고를 받아들여 한나라 예서(隸書)에 정진하여 나름의 독창적인 일가의 서풍(書風)을 이루었으며, 또한 지두서(指頭書)로도 이름이 났다.
『강산여화』란 글씨는 그가 지두서로 쓴 글씨에 김정희의 발문이 부기되어 있는 탁본첩이다. 한예(漢隸)의 필의(筆意)가 담긴 글씨로, 안진경의 글씨를 얼마나 익혀 썼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좋은 글씨다. 하지만 아직도 안진경의 품을 떠나지 못한 느낌을 주고, 오히려 김정희의 서체를 모방하여 쓴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김정희의 충고를 받아 들인지 얼마 되지 않을 때 쓴 글씨 때문일 것이다. 김정희의 발문에 패수귀객(浿水歸客)이란 제첨으로 보아, 김정희가 부친이 평양감사로 가자 아들로서 시봉차가서 있다가 돌아올 즈음 그의 제자들이 기념으로 만든 글씨첩이 이것인 것 같다.
▶조광진(曺匡振)의『강산여화』란 글에 발문을 씀
江山如畵. 강산이 그림과 같다.
此訥人指書, 以篆隸意運鐘王法, 神妙不測, 如江字水點, 較之眞原本, 尙不能形模其一二. 浿水歸客題. 이것이 눌인(訥人) 조광진(曺匡振)이 지두(指頭)로 쓴 것이다. 전서(篆書)와 예서(隸書)의 필의(筆意)로 위나라 종요(鐘繇)와 진나라 왕희지(王羲之)의 서법을 운용했는데, 그 신묘함이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나 강(江)자의 물수(氵)변은 원본(原本)에 견줄 때, 아직 10에 1~2할도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패수(浿水)의 귀객(歸客) 김정희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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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의『강산여화(江山如畵)』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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