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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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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김생(金生)이 이백(李白)의 칠언시『송하빈객귀월(送賀賓客歸越)』을 쓴 글씨이다. 서예역사에서 화두가 된 두 성인이 있는데, 중국이 왕희지(王羲之)라면 한국에는 김생(金生)이 있다. 왕희지가 이전의 전(篆), 예(隸)를 토대로 위(魏), 진(晉)나라시대 이래의 글씨의 법을 세웠다면, 김생은 통일신라 이전의 삼국글씨를 토대로 왕법(王法)과 당법(唐法)을 하나로 녹여 한국서예의 법을 처음으로 세운사람이다. 어려서부터 글씨 공부에 힘을 쏟아 최고의 서예가로 이름을 날린 그는 고려 때 송나라에 알려져 중국에서 가장 뛰어난 서예가인 왕희지보다 더 잘 쓴다는 칭송과 함께 해동서성(海東書聖)이라고 불렸다.
그는 어려서부터 나뭇가지로 땅을 긁으며 운필법(運筆法)을 익혔다. 그가 토굴 속에서 나뭇잎에 글을 쓰기시작하면 주변일대의 낙엽과 시냇물이 새까맣게 변했다고 한다. 매일 글씨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그는 불법을 수련했다. 번뇌를 끊고 의식주에 대해 탐하는 마음을 버리며 몸과 마음을 깨끗이 닦았던 그는 참기 어려운 고행 속에서 글씨 쓰기에 몰두했다. 그의 정확한 행적은 역사 기록에서 찾아보기 어렵지만, 김생의 작품이 모두 사찰 또는 불교와 관련된 점을 미루어 불심을 닦으며 홀로 지냈다는 그의 삶을 유추해볼 따름이다.
▶김생(金生)이 이백(李白)의 칠언시『송하빈객귀월』을 씀
왕희지(王羲之)의 벼슬이 우군장군(右軍將軍)이었다. 그는 거위[鵝]를 좋아하였는데, 산음(山陰)에 사는 도사(道士)가 여러 마리를 가졌으므로, 왕희지가 요구하니 도사가, 황정경(黃庭經) 한 벌을 써 주면 바꾸겠소. 하므로 가서 황정경을 써 주고는 거위를 상자에 넣어 돌아왔다는 고사를 인용하였다.
鑑湖流水春始波, 狂客移舟逸興多, 山陰道士如常見, 應寫黃庭換白鵝. 경호의 맑은 물은 봄이 되자 출렁이고, 미친 나그네 배를 저으니 고상한 흥취가 많구나. 산음의 도사를 만난다면, 황정경(黃庭經)을 써주고 거위와 바꾸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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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생의『송하빈객귀월(送賀賓客歸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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