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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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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란다. 행복의 조건은 반드시 가진 것이 많고 적은데 있는 것은 아니고, 지위가 높고 낮은데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주관적으로 자기 마음 가짐에 있는 것이다. 객관적인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
옛말에 족, 부족(足不)이란 말이 있다. 부족 하더라도 足 하다고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에 여유가 있고, 足 하지만 不足하다고 생각하면 항상 부족한 것이라는 말이다. 비단 초근목피(草根木被)하고 조반석죽(朝飯夕粥)을 할지라도, 족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예부터 천석꾼이나 만석꾼 그리고 지위가 높을수록 행복의 지수가 바느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자네 요즘 행복 한가”라고 묻는 다면, 그 말에 선뜻 긍정적으로 대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오늘날 우리 사회는 행복의 잣대를 소유와 사회적 지위의 개념에서 생각하기 때문에, 행복지수를 선뜻 가늠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인간의 욕구는 한이 없다고 한다. 두면 더 두고 싶고, 가지면 더 가지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욕구란다. 풍요와 행복이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이룬다 해도, 만족할 줄 모른다면 진정한 행복은 가질 수 없다.
3만불 국민소득에 유래 없는 자유를 누려도, 자기 주관적인 마음의 행복이 없으면 진정한 행복은 느낄 수가 없다.
근간 재벌들의 부자간 형제간의 골육상잔(骨肉相殘)의 행복 지수는 얼마나 될까? 뿐만 아니고 지나친 소유의 욕심 때문에 폐가 망신하는 정치권 인사들이며, 사회 지도층의 사례는 우리를 실망스럽게 하고 있다.
남을 음해 모략하고, 중상하고, 나 아니면 모두가 부당하고, 남의 실폐를 자기 성공보다 더 좋아 하는, 기구 만장한 사회라면, 진정한 행복 지수는 연목구어(緣木求魚)가 아닐까 한다.
어느 군주가 지방 민정 시찰에서, 토담 오드막 집 밖으로 웃음 꽃이 끊이질 않는 것을 보고, 그 사연을 알아 본즉, 3대가 둘러 앉아 빚을 갚고 빛을 놓는 이야기(부모의 은혜를 갚고, 자식에게 은혜를 놓는 다는 말)로 웃음꽃을 피우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고, 한나라의 군주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자기 주관적인 행복에 있다는 것을 깨달게 했다는 일화는, 물질만능과 권위주의 사고가 팽배한 우리들 사회를 되돌아 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