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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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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김유근의『괴석도(怪石圖)』에 제사(題辭)를 쓴 그림이다. 그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본관은 안동, 자는 경선(景先), 호는 황산(黃山)이고, 영안부원군 김조순(金祖淳)의 아들이다. 1810년(순조 10) 식년문과 부사과에 응시하여 급제한 뒤 곧 홍문록회권에서 5점을 얻고 사서를 거쳐 검상이 되었다. 1817년에는 이조참의가 되고, 2년 뒤에는 성균관 대사성, 홍문관 부제학, 이조참판, 사헌부 대사헌등이 되었으며, 1827년 평안도관찰사로 부임하는 도중 면회를 거절당한 전직관리에 의해 가족 5명이 살상되는 흉변을 당하여 부임하지 않고, 돌아와서는 병조판서, 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아버지가 사망한 뒤 군사의 실권을 잡아 판돈녕부사에 올랐으나, 중풍에 걸려 4년간 말을 못하는 고통을 받다가 죽었다. 시와 서화에 모두 능했으며, 특히 갈필(渴筆)을 사용하여 지극히 간일(簡逸)하고 문기(文氣)넘치는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를 잘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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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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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에 돌은 응어리진 단단함과 오래 가는 믿음성이 덕목이다. 게다가 침묵한다. 근신하는 선비의 벗이 되기에 족하다. 지금 보이는 돌은 할머니 뱃가죽처럼 주름투성이다. 울퉁불퉁하기는 굴 껍질 같고, 위는 넓고 아래가 좁아서 기우뚱하다. 생긴 꼴이 괴상해서 괴석이다. 산이나 동물 형상, 아니면 꽃무늬마냥 유별난 수석도 많은데 굳이 못난이 돌을 그린 까닭이 뭔가. 그림에 김유근이 사연을 썼다. '정신이 뛰어나서 귀한데 하필 모양 닮은 것을 찾겠는가. 함께 좋아할 듯해서 보내니 벼루 놓인 곳에 두게나.' 라고 적혀있다. 흙은 바스러지고 나무는 휜다. 돌은 생김새가 안 바뀐다. 하지만 찧고 갈고 다듬는 수석 애호가도 있다. 이리 되면 교언영색(巧言令色)이다. 돌의 미쁨은 성형수술하지 않는 데 있다. 모름지기 돌의 마음을 새길 일이다. 이 그림을 그린 이는 김유근이다. 그림 밑에 '겨울 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자네를 위해 그렸네.' 라고 썼다. 그는 친구인 김정희에게 선물했다. 김유근이 김정희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알 수 있다. 친교를 담은 돌 하나가 좋은 우정을 간직하도록 하였다.
▶김유근(金逌根)의『괴석도(怪石圖)』에 제사(題辭)를 씀
所貴神勝, 何求形似, 呂贈同好, 俾傍硯几. 黃山自題 冬夜爲秋史仁兄作. 黃山 정신이 뛰어나서 귀한데 하필 모양 닮은 것을 찾겠는가. 함께 좋아할 듯해서 보내니 벼루 놓인 곳에 두게나. 김유근이 스스로 쓰다. 겨울 밤 추사 자네를 위해 그렸네. 김유근이 그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