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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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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논쟁이 정국을 뜨겁게 하고 있다. 좌 편향된 역사를 바로 잡기위해서는 국정교과서 체제를 가야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고, 야당은 현행 검정 교과서 제도를 유지하자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었다고 주장하는 주요 쟁점은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정통성과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 그리고 5.16의 평가 등
100년도 체 되지 않은 근대사 이다. 아직 이 시대를 경험하고 살아온 세대가 꽤 있음에도 ‘이것이 대한민국의 근대사이다.’ 라고 섣불리 재단하는 것은 많은 시비를 가져올 수가 있다. 역사의 저술은 다수 국민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역사 교과서 논쟁에 앞 서 지나간 역사에서 역사가들이 어떤 고민을 했는가를 살펴보자.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그의 명저 로마제국의 쇠망사를 집필하기 전(1.764년) 이렇게 말했다.
“나는 로마의 카피톨리노 언덕 폐허에서 로마제국의 쇠망사를 집필하겠다는 구상을 처음 했고, 그때 이후 거의 20년 동안 이 역사서의 집필은 나를 즐겁게 하는가 하면 괴롭게 했다. 나의 당초 목표와 수준에 얼마나 근접 했는지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이제 최종적으로 이 역사서를 독자들의 호기심과 솔직함 앞에 내놓는 바이다.”라고
12년 간 매달린 로마제국의 쇠망사는 에드워드 기번의 예리한 통찰력과 수려한 문장 덕에 세계적인 명저가 되었다.
중국의 공자도 오랜 방랑을 끝낸 뒤 말년에 ‘나의 도가 행해지지 않았으니 나는 무엇으로써 후세에 내 자신을 드러내겠는가?’라면서 노나라 역사서 춘추를 집필했다.
공자가 춘추(春秋)를 쓸 때 오로지 혼자 집필하고 교정을 보았다고 한다.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은 것이다. 그 후 공자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후세에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춘추 때문일 것이며, 나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이 또한 춘추 때문일 것이다.”
칼날 같은 춘추필법의 직필을 보여 준 것이다. 이 후 사람들은 모두가 역사의 기록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역사적 사실을 진실 되게 검증하고 객관성을 확보했기 때문에 춘추가 역사책의 고전이 된 것이다.
중국 역사서를 논하는데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빼고는 말 할 수가 없다. 130권 52만 6천 5백자에 달하는 방대한 저작의 이름은 본래 태사공서이나 삼국시대 이후 사기로 불리게 되었다.
2.050년 전에 쓰여 진 역사서가 불후의 명작이 된 까닭은 철저하게 사실에 입각한 역사서이 때문이다. 당시 사실을 규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였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기성 개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합리적인 정신아래 방대한 분량의 사료를 취사선택 해 나간 것이다. 사물을 개별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항상 전체와 관련시켜서 다룬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 사건에 대해 기존의 전통적인 판단을 유보한 체, 끝까지 일관되게 왜? 라는 의문이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다. 더군다나 당시 한나라 고조 유방을 거리의 건달이었다고 표현하는 배짱도 가지고 있었다. 한나라 무제 시절이었으니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같은 민족이라 함은 같은 언어와 문화 그리고 역사를 공유해야 한다. 역사가 진보와 보수에 따라 다르게 기술된다면 국민을 혼란에 빠트리고 좌우 편 가르기에 지나지 않는다.
로마제국의 쇠망사나 춘추 그리고 사기가 수천 년이 지나도 더욱 빛나는 것은 특정 이념에 편향되지 않고 오로지 진실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역사가, 역사학자들은 앞 선 역사를 마주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