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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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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강세황(姜世晃)의 사군자4폭 중『매화도(梅花圖)』에 화제를 쓴 그림이다. 그는 조선 후기의 문신, 화가이다. 일찍부터 글씨와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오랫동안 학문과 서화에 열중했으며, 이익(李瀷) ‧ 심사정(沈師正) 등 명사들과 두루 교제했다. 61세 때 비로소 벼슬길에 올라 66세 때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 참의, 한성부 판윤 등을 두루 거쳤다. 시 ‧ 서 ‧ 화 삼절(三絶)로 일컬어졌으며, 스스로 그림을 그리고 그림에 대한 평을 해 화단의 총수역할을 담당했고, 특히 새로이 서양화법을 수용하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그의 서화는 중국에까지 이름이 나서, 1784년(정조 8) 그가 사신으로 북경에 갔을 때 그림이나 글씨를 얻으려는 사람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에게서 그림을 배운 제자 중에서 김홍도(金弘道) ‧ 신위(申緯) 등이 유명하다.
이 그림에 화제를 쓴 허필(許佖)은 조선 후기의 학자, 서화가이며, 허규(許逵)의 아들이다. 1735년(영조 11)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관직을 가지지 않고 학문과 서화에 전념하여 당시에 삼절로 불리었다. 이용휴(李用休)가 쓴 그의 지명(誌銘)에는 청빈하고 소탈한 성격과 문학과 고예술품(古藝術品)을 사랑하는 태도가 잘 묘사되어 있으며, 또한 모든 서체(書體)에 능통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전서(篆書)와 예서(隷書)에 뛰어났다고 하였다. 산수, 영모 등의 그림을 그렸으며 산수화는 중국 명(明)나라 심주(沈周)의 양식을 따랐다고 한다. 강세황과는 경기도 안산에 같이 살면서 막역한 지우로 지냈다. 이 그림은 강세황의 사군자 4폭 중에 매화도에 그가 아래와 같이 화제를 썼다.
▶강세황(姜世晃)의 사군자4폭 중『매화도』에 화제를 씀
低頭背面揔佯羞, 嫰泣輕嚬一種愁, 嫁與東風誰氏子, 渭南楊柳最風流. 烟客小者. 고개 숙이고 얼굴 돌려 수줍은 듯, 우는 듯 찡그린 듯 근심스럽다. 봄바람 어느 집에 시집가는가, 버들 늘어진 위남(渭南)이 가장 풍류 있는 곳이라. 연객(烟客) 허필(許佖)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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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암 강세황의『매화도(梅花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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