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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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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양기훈(楊基薰)의『화조도(花鳥圖)』에 화제를 쓴 그림이다. 그는 조선 말기 화원으로 주로 평양에서 활동한 화가이다. 1883년 전권대신 민영익(閔泳翊)을 따라 미국에 다녀온 뒤 미국풍속화첩(美國風俗畵帖)을 그렸다. 매(梅), 난(蘭), 영모(翎毛)를 그렸고, 특히 노안(蘆雁)그림대표가로 알려졌다. 화풍은 편안한 맛을 주는 자기식의 정서가 있으나, 짜임새나 필력이 느슨하여 화격(畵格)이 떨어진다.
이 작품은 국화가지와 그 아래에서 방아깨비를 노리는 새를 그린 것으로 소박한 필치의 기량을 보여준다. 그의 친우 백련거사(白蓮居士) 지운영(池雲英)은 조선 말기 및 근대 초기의 문인화가이다. 김정희(金正喜)의 제자로 여항문인(閭巷文人)이었던 강위(姜瑋)의 문하에서 시문 등을 배웠다. 1870년대 말에 청계천 광교부근에 살던 역관(譯官)과 의관(醫官) 등 기술직 중인(中人)들이 강위를 맹주(盟主)로 하여 맺은 육교시사(六橋詩社)의 동인으로 활약하였다. 1880년대 초반에 통리군국사무아문(統理軍國事務衙門)의 주사(主事)로 개화정책을 구현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러나 갑신정변 후에 김옥균(金玉均)을 암살하기 위하여 일본에 건너갔다가 미수에 그치고, 일본경찰에 붙잡혀 강제귀국당하여 원악지(遠惡地)로 유배당하였다. 1895년 유배생활에서 풀려나 상소문을 올려 재기를 꿈꾸었지만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은둔하여 시와 그림에 몰두하게 되었다. 옛 그림들로 임모(臨模)하여 기량을 길렀으며, 특히 산수 인물을 잘 그렸다. 화제(畵題)는 친구 지운영이 썼으며 아래와 같다.
▶양기훈(楊基薰)의『화조도』에 화제(畵題)를 씀
行其所無思, 可愛可憎, 余觀石然畵甚多, 而此爲尤好, 故人重起九原, 當勸美酒一盃, 七十翁白蓮居士, 觀而贊之. 의식을 초월하여 아무 생각 없는 듯이 그려 놓은 것이, 너무 좋다 못해 미울 정도다. 내가 양기훈(楊基薰)의 그림을 많이 보아 왔지만 그 중에서도, 이 그림이 더욱 좋다. 그 친구를 저승에서 다시 일으킬 수만 있다면 내 꼭 좋은, 술 한 잔을 권하련만. 70세 늙은이 백련거사 지운영(池雲英)이 보고 찬(贊)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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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연 양기훈의『화조도(花鳥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