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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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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김홍도(金弘道)의 행려풍속도 중『취중송사도(醉中訟事圖)』에 제시를 쓴 그림이다. 그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 화가이다. 화원 집안인 외가로부터 천부적 재질을 물려받은 듯하다. 어려서는 경기도 안산에 칩거 중이던 당대 최고의 문인화가이며 이론가인 강세황(姜世晃)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다. 20대에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으며, 28세 때인 1773년에는 어용화사로 발탁되어 영조어진과 왕세자의 초상을 그리고, 이듬해 감목관(監牧官)의 직책을 받아 사포서(司圃署)에서 근무했다. 1777년 별제(別提)로 있으면서 강희언(姜熙彦) ‧ 김응환(金應換) ‧ 신한평(申漢枰) ‧ 이인문(李寅文) 등과 함께 그림제작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했다. 1781년에는 한종유(韓宗裕) ‧ 신한평 등과 함께 정조어진 익선관본(翼善冠本) 도사(圖寫)의 동참화사로 활약하고 그 공으로 경상도 안동의 안기찰방(安奇察訪)을 제수받았다. 이 무렵부터 명(明)나라의 문인화가 이유방(李流芳)의 호를 따라 단원(檀園)이라 자호했다.
이 행려풍속도(行旅風俗圖)는 김홍도가 그린 첩(帖)이다. 마지막 화폭에 적혀 있는 관기에 의하면 그가 1778년 초여름에 강희언의 집으로 추정되는 담졸헌(澹拙軒)에서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모두 8폭으로 이루어졌으며, 각 폭의 상단에 강세황의 화평이 적혀 있다. 여행 중에 목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세속(世俗)을 묘사한 것으로 제1폭이 지방수령이 백성들의 송사를 듣는 장면인『취중송사도』이다. 어느 고을수령이 관속을 거느리고, 가마에 앉아 순행을 마치고 거나해진 몸으로, 귀청행사 도중 마을의 백성이 송사를 올렸다. 관아로 귀청하는 길이니 노상에서 즉석 업무를 처리하는 중인데, 갓을 뒤로 뉘어 쓴 수령이 땅바닥에 모로 눕다 시피 한 아전의 자태에서 판결을 내리는 수령이나, 판결문을 받아쓰는 아전이나 모두가 취중이니, 그 판결 또한 오판이나 아닌지 의심스러움을 표현하는 장면의 그림이다.
▶김홍도(金弘道)의 행려풍속도 중『취중송사도』에 제시를 씀
供級之人, 各執其物, 後先於肩輿前, 太守行邑, 甚不草草, 村氓來訴, 形吏題牒, 乘醉呼寫, 能無誤決. 豹菴 評. 물품을 공급하는 이들이 각기자기 물건을 들고, 가마의 앞뒤에 있으니 고을수령의 행색이 초라하지 않다. 시골사람이 나서서 진정을 올리고, 형리가 판결문을 쓰는데 술 취한 가운데 부르고 쓰니, 오판이나 없을 런지 걱정이다. 표암 강세황이 평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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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의『취중송사도(醉中訟事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