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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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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강세황의『벽오청서도(碧梧淸暑圖)』에 화제를 쓴 그림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글과 그림에 재능이 뛰어나, 8세 때 시를 짓고, 13~14세의 나이에 쓴 글씨로 병풍을 만드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아버지의 사랑과 교육을 받았으며, 매형이었던 임정(任珽)의 영향도 크게 받았다. 처남 유경종(柳慶宗) 외에도 허필(許佖), 이수봉(李壽鳳) 등과 절친하게 지냈으며, 이익(李瀷), 강희언(姜熙彦) 등과도 교유하였다. 당대의 유명한 화가였던 김홍도(金弘道), 신위(申緯) 등도 그의 제자들이다. 벼슬에 뜻이 없어 젊은 시절에는 주로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였다. 32세 때 가난 때문에 처가인 안산(安山)으로 이주한 뒤에도 오랫동안 학문과 서화에만 전념하였다. 처음 벼슬을 한 것은 61세로, 영조의 배려에 힘입어 관계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후 66세 때 문신정시에 장원급제하였으며, 영릉참봉, 사포별제, 병조참의,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하였다. 72세 때 북경사행, 76세 때 금강산 유람을 하고, 기행문과 실경사생 등을 남겼다. 시 · 서 · 화의 삼절로 불렀으며, 식견과 안목이 뛰어난 사대부 화가였다. 그 자신은 그림제작과 화평(畵評)활동을 주로 하였는데, 이를 통해 당시 화단에서 예원의 총수로 한국적인 남종문인화풍을 정착시키는 데 공헌하였다. 평생 동안 추구한 그의 서화의 세계는 궁극적으로 습기(習氣)도 속기(俗氣)도 없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었다.
이 그림은 시원한 벽오동나무 그늘 아래 초가집에서 무더위를 식히고 있는 선비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벽오동나무는 태평성대가 되면 나타난다는 봉황이 앉는 나무로 알려져 선비의 집 뜰에 많이 심어졌던 나무이다. 위쪽에 방심석전(仿沈石田)이라는 글자가 보이는데 이것은 심석전(沈石田) 즉 심주(沈周), 명나라의 대표적인 문인화가 호가 석전(石田)으로 심석전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오파의 창시자로 문징명(文徵明), 동기창(董其昌) 등 많은 문인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림을 방작(仿作)했다는 말이다. 방작이란 본떠서 그린다는 의미로 동양화에서 많이 사용되는 창작방식이다.
▶강세황의『벽오청서도(碧梧淸暑圖)』에 화제를 씀
碧梧淸暑仿沈石田. 忝齋. 벽오청서(碧梧淸暑), 시원한 벽오동나무 그늘 아래 무더위를 식히다. 명나라의 대표적인 문인화가 석전(石田) 심주(沈周)의 방작(仿作) 즉, 본떠서 그린다. 첨재(忝齋) 강세황(姜世晃)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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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암 강세황의『벽오청서도(碧梧淸暑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