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경북문화신문 |
|
수자원 공사가 추진 중인 4공단 확장단지 내 구미시 첫 시민광장이 왕산공원으로 명명될 것으로 보인다. 구미시 브랜드인 예스 구미광장으로 정하자는 의견이 제시됐으나, 시대를 초월하는 이름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여론과 함께 구미시와 수공측 역시 구미경실련이 제안한 ‘왕상광장’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왕산광장 명칭 제정, 구미경실련이 주장하는 명분
구미시 임은동 출신의 왕산 허위 선생(1855∼1908)은 우당 이회영 선생(서울), 석주 이상룡 선생(안동)과 함께 형제, 자식들이 전 재산과 목숨을 독립운동에 바친 독립운동 3대 명문가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왕산 선생은 구한말 전국 13도 의병을 연합해 ‘서울진공 작전’을 주도하면서 의병운동을 전개했던 제2대 13도 의병총대장이었다. 또 형제, 장남, 종손자까지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맏형은 논 3천 마지기를 팔아 군자금으로 기부했다. 특히 대구시에 살고 있는 장손자는 왕산 선생의 생가 터 600평을 구미시에 기부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무)의 귀감으로써 대한민국 ‘독립운동 3대 명문가’라고 할만하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고, 구미시는 ‘왕산허위선생 기념관’과 ‘왕산허위선생 기념공원’(생가 터)을 건립·조성하고, 서울시는 선생이 수도 탈환을 진두지휘한 격전지인 청량리∼동대문 간 도로명을 ‘왕산로’로 제정했다. 또 대구 달성공원은 순국기념비를 세워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더군다나 구미시 지원 창작 오페라 ‘왕산 허위’가 2010년 이후 해마다 재공연 되고 있다.
안중근 의사도 거사 후 법정에서 “우리 이천만 동포에게 허위 선생과 같은 진충갈력(盡忠竭力) 용맹의 기상이 있었던들 오늘과 같은 국욕(國辱)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본시 고관이란 제 몸만 알고 나라는 모르는 법이지만, 허위 선생은 그렇지 않았다. 따라서 허위선생은 관계(官界) 제일의 충신이라 할 것이다.”라면서 왕산 선생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왕산 선생의 많은 후손들은 독립운동으로 인해 해외에 뿔뿔이 흩어져 어려운 생활을 면치 못했다. 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이 매우 가난하게 산다는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왕산 선생의 후손들 사례가 종종 인용될 정도이다.
잘못된 국가사회지도층이 만든 극단적인 양극화로 청년세대의 희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 시대에, 양극화 관련 제도개선을 촉진하고, 제도개선만으로 충족할 수 없는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선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이 확산돼야 한다.
또 사회적자본(social capital)의 핵심인 ‘사회적 신뢰’(지역사회 지도층에 대한 신뢰) 구축이 지역경쟁력의 필수전제라는 점에서 왕산 선생과 일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과 실천이 오늘의 지역민과 청소년들에게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구미의 첫 시민광장이자 대표광장의 이름은 당연히 <왕산광장>으로 하는 게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이다.
평가 여부를 떠나서 박정희가 이순신 장군을 불러냈듯이, 역사인물은 당대의 시대정신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지역사회 지도층을 노블레스 오블리주 가치관으로 바로 세워 지역경쟁력을 높이고, 시민과 청소년들에게 나눔의 가치관을 확산시키기 위해, 구미시민들이 왕산 선생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귀감이라는 새로운 차원으로 불러내야한다. 왕산광장은 그 첫 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