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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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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송준길이『행초』로 손자 송병하(宋炳夏)에게 써 보낸 글씨이다. 그는 조선 중기에 문신 겸 학자며, 김장생의 문인으로 1624년 진사로서 세마(洗馬)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20여 년간 학문에만 전념하다가, 1649년 효종이 즉위하자 김집(金集)의 천거로 발탁되었다. 부사, 진선, 장령을 거쳐 집의(執義)에 올랐고 송시열(宋時烈) 등과 함께 북벌계획(北伐計畵)에 참여하였다. 그 뒤 벼슬길에 여러 차례 천거되었으나 사퇴하였다가 1658년 대사헌(大司憲)을 지냈다. 당시 송시열은 이조판서의 위치에 있으면서 송준길과 함께 국정을 주도하였다. 1659년 병조판서가 된 뒤 우참찬 · 좌참찬 겸 좨주 · 찬선을 지냈다. 영의정이 추증되었으며 문묘(文廟)를 비롯하여, 공주의 충현서원(忠顯書院) 등에 배향되었다. 학문적으로는 송시열과 같은 경향의 성리학자로서 특히 예학(禮學)에 밝고 이이의 학설을 지지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뛰어났다. 송시열과 함께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하며 북벌론(北伐論)을 주도했고, 예송(禮訟)으로 왕도정치를 주장한 인물이다. 그의 학문과 철학세계가 예술글씨로 승화된 것이 이른바 양송체(兩宋體)이다.
이 글씨는 세로177.8, 가로77.6㎝로 그가 남긴 여러 필적 가운데 규모가 제일 큰 대폭이고, 손자 송병하라는 수증자와 1669년이라는 필사연대를 완벽하게 갖춘 예이다. 아울러 송준길의 가지런한 행초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서체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는 1669년 4월에 64세의 할아버지인 송준길이 손자 송병하를 위해 써준 글로, 송(宋)나라 양시(楊時)의 칠언절구인 저궁관매기강후(渚宮觀梅寄康侯)를 장지(壯紙) 4장을 이어 붙여 대자 행초로 쓴 것이다.
▶송준길이『행초』로 손자 송병하에게 글씨를 씀
欲驅殘臘變春風, 只有寒梅作選鋒, 莫把疎英輕鬪雪, 好藏淸艶月明中. 崇禎己酉淸和, 春翁書贈孫炳夏. 남은 섣달 몰아서 봄바람 만들려 했더니, 다만 추위 속 매화가 맨 먼저 피어나네. 듬성듬성 핀 꽃 잡아 눈과 다투지 말고, 맑고 고운 자태 달빛 속에 갈무리 하라. 1669년(현종 10) 4월 춘옹 송준길이 손자 송병하에게 써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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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춘당 송준길의『행초(行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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