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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사김정희의『불광(佛光)』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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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김정희가『불광(佛光)』이란 편액을 팔공산 은해사(銀海寺)에 써준 글씨이다. 그는 1848년 12월 6일에 제주도 유배에서 해배된다. 유배를 마치고 불교에 깊이 귀의하게 된 그는 당시 은해사 주지 스님의 요청에 의해 몇 점의 글씨를 주었다. 원래 불광은 은해사 내의 불광각(佛光閣)에 걸려 있던 현판이었다. 지금은 이 글씨만 남아 있고 전각은 소실되었다. 이 글을 쓴 시기는 유배를 끝내고 서울에 있었던 1850년경에 대웅전(大雄殿)이나 보화루(寶華樓)편액과 같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이 편액은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이 글씨는 대작이고, 불(佛) 자(字)의 가장 긴 세로획이 130㎝ 정도로 길게 뻗어 있다. 당시 주지 스님이 김정희에게 몇 번이나 글씨를 요청했지만 글씨가 내려오지 않자 불상을 하나 가지고 갔더니 크게 웃으면서 아랫사람을 불러 벽장 속에 수십 장 써놓은 불광이란 글씨 가운데 잘 된 것을 골라오라고 했다. 그런데 골라온 작품이 맘에 들지 않아 그가 직접 골라서 주지 스님에게 내어주었다. 주지 스님은 그 글씨를 받아 나무판에 새겼는데 나무가 작아서 그랬는지 불(佛) 자의 마지막 세로획이 너무 길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길게 뻗어 내린 세로획을 짧게 잘라 光(광) 자와 비슷한 크기로 새겨서 걸어 놓았다. 훗날 그가 은해사에 와서 그것을 보고는 아무 말 없이 그 편액을 떼어 내리게 한 뒤 땔나무로 법당 마당에서 불 질러 버렸다. 주지 스님은 그때야 그가 크게 화를 낸 이유를 파악하고 사과한 뒤 원본 그대로 세로획을 길게 하여 다시 새겨 걸었다고 한다.
그의 문자에 대한 조형감각을 엿볼 수 있는 역작이다. 광(光) 자의 윗부분 두 점을 다르게 처리했으며 아랫부분을 글자의 폭 정도로 비워둠으로써 공간을 살린 여백미가 일품이고, 불(佛) 자의 인(人)변은 짧게 했고 세로획 두 획 가운데 한 획도 왼쪽으로 짧게 삐쳐 변화를 구하면서 마지막 세로획은 팽팽한 활시위처럼 힘차면서 길게 뻗어 내림으로써 기운미를 느끼게 한다. 이 작품에서 핵심은 바로 마지막 세로획인 것이다. 단조로운 두 글자지만 전체 장법(章法)으로 보면, 글씨가 있는 부분은 꽉 차게 했고 아랫부분은 비워 둔 허실 처리가 일품이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불광』이란 편액을 씀
글씨는 세로 135㎝, 가로 155㎝의 송판 4장을 이어붙인 대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