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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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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김홍도가『죽리탄금도(竹裏彈琴圖)』에 제시를 쓴 그림이다. 그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 화가이다. 화원 집안인 외가로부터 천부적 재질을 물려받은 듯하다. 어려서는 경기도 안산에 칩거 중이던 당대 최고의 문인화가이며 이론가인 강세황(姜世晃)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다. 20대에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으며, 28세 때인 1773년에는 어용화사로 발탁되어 영조어진과 왕세자의 초상을 그리고, 이듬해 감목관(監牧官)의 직책을 받아 사포서(司圃署)에서 근무했다. 1777년 별제(別提)로 있으면서 강희언 · 김응환 · 신한평 · 이인문 등과 함께 그림제작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했다. 1781년에는 한종유 · 신한평 등과 함께 정조어진 익선관본(翼善冠本) 도사(圖寫)의 동참화사로 활약하고 그 공으로 경상도 안동의 안기찰방(安奇察訪)을 제수받았다. 이 무렵부터 명(明)나라의 문인화가 이유방(李流芳)의 호를 따라 '단원(檀園)'이라 자호했다. 1791년에 다시 어용화사로 선발되어 정조어진 원유관본(遠遊冠本) 제작에 참여한 공으로, 그해 겨울 충청도 연풍현감(延豊縣監)에 임명되어 1795년 정월까지 봉직했다.
이 부채 그림은 대숲 속에서 금(琴)을 뜯는 내용이다. 홀로 금을 연주하는 선비가 앉아 있다. 선비는 홀로 앉히고 그 뒤에 차 끓이는 동자와 그 앞에 커다란 바위를 포치해 대숲이란 연주무대를 입체적으로 안배했다. 작은 부채 속 깊숙한 공간설정이며 댓잎의 농담 및 시원스러운 여백 처리에서 예사롭지 않은 구성력이 엿보이는 그림이다. 화면 위 빈 곳 흘려 쓴 제시는 그가 당나라의 왕유(王維)의 시 죽리관(竹裏館)을 옮겨 적은 것이다. 달 아래 대나무 숲에서 홀로 금을 연주하다 소리 높여 노래한다는 내용에는 다분히 당나라 시 특유의 주정적 낭만이 드러난다. 이러한 탄금의 연주를 따라해 본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옛 그림과 옛 시에서 수없이 재현되고 정착된 이미지다. 왕유는 40세에 벼슬을 접고 홀로 장안 근처에 별장을 짓고 이사해 늘그막을 지냈다. 그는 30세에 아내와 사별했으나 불심을 지녔기에 홀로 지냈다고 한다. 그의 별장은 사실상 여러 채 건물이 화려하고 번듯한 호화별장이었는데, 왕유는 소박하게 지냈노라 생각했고 후대인들도 그것을 인정했다. 별장 이름이 망천장(輞川莊)이다.
▶김홍도(金弘道)가『죽리탄금도(竹裏彈琴圖)』에 제시를 씀
獨坐幽篁裏, 彈琴復長嘯, 深林人不知, 明月來相照. 檀園. 그윽한 대숲에 나 홀로 앉아, 거문고 타다가 휘파람 길게 불어본다. 숲이 깊으니 사람들이 모르지만, 밝은 달이 비추어 주네. 단원 김홍도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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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원 김홍도의『죽리탄금도(竹裏彈琴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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