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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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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하여 1.
동일한 사안을 두고 한사람은 '나라를 위해서했다'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나라를 아수라장이 되게 한다'고 합니다. 합치면 '아수라장이 되는 나라를 만든 것도 다 나라(가 잘되기)를 위한 것'이라는 억지가 생기지요. 그 나라가 같은 나라인데도 말입니다.
짐작하셨겠지만 미르재단, K-스포츠 재단 등을 통해서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행정처리(국정감사에서 장관은 사례가 있다지만 대한민국에 사는 법인관련 사무장 모두에게 물어보십시오. 단언컨대 그 사안 이전에, 이후에도 없을 황제등록, 접수, 수리입니다), 수백억 원의 자금의 단시간 모금(여당대표라는 자가 세월호의 전국 모금과 비교하는 코미디를 연출합니다), 개인 사업화하는 국가행사, 자신의 딸이 다니는 학교에 대한 교수 교체를 비롯한 과제물, 학점, 학사 문제 등 온 나라가 끓는 냄비처럼 들썩이는데 문제 당사자인 최순실 씨는 "나라를 위해 한 일인데 내가 무슨 죄냐"(JTBC. 2016.10.17)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최순실이라는 사람이 누구인데 나라를 불신과 불통의 아수라장이 되게 해놓고 정작 당사자는 말 한 마디 없는가. 아니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인가"(2016.10.10)라고 하여 '나라를 불신과 불통의 아수라장이 되게 한 것'이라고 공격을 아끼지 않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2.
이처럼 같은 문제를 두고 한쪽은 '나라를 위해서'라 하지만 다른 한쪽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이라는 강력한 반대가 100일이 넘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요. 성주에서 사드반대 촛불은 비도, 바람도, 힘으로도 막을 수 없고, 김천에서는 사드배치 반대에 호응하는 전국의 70여개 도시 YMCA의 현수막이 김천에 들어가는 넓은 길 양쪽에 빼꼭히 들여 차 나부끼는 등 격랑 속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월 18일 김관용 경북지사는 “국가 안위를 위해 대승적으로 수용하되, 안전을 지키고 지역발전을 이끌어 내는데 에너지를 결집하자”고 기자회견하면서 사드배치는 국가안위와 지역발전의 계기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나 한겨레신문은 '정운찬 전 총리, 박 대통령 대북 정책·사드 배치 정면 비판'이란 제하에 “현대적인 무기가 하나라도 더 들어온다는 것은 전쟁 위험을 더 높인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남쪽이나 북쪽이나 다 죽기 때문에 전쟁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확신하고, 전쟁을 막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2014.10.15)라고 전하여 (한반도에) 사드배치는 '전쟁의 위험을 더 높이는 것'이고, '남한 북한 모두를 죽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에 당혹할 수밖에 없지만 모두를 죽이는 무기를 들여놓으면서 국가안위, 발전 운운하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억지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3.
모든 일이 '나라를 위한다'로 귀결되는 듯합니다. 참여정부시절 외교부 장관의 회고록에서 나타난 말을 통해서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현 야당의 대통령 후보에 대한 무차별적인 종북, 내통, 사퇴, 등 할 수 있는 욕설이 남발되자 국민의 당 박지원 위원장은 김정일과 박근혜 대표사이의 4시간 대화를 공개할 수도 있다고 하여 여당의 공격에 대해 부당성을 맞받아치는 듯 하다가 "이제는 '나라를 위해서' 얘기하지 않겠습니다"(2016.10.19.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라고 말을 바꾸기도 합니다.
정치인을 물론이고 모든 논쟁에서 가장 최고의 명분은 '나라를 위해서'인 듯합니다. 전술한 최순실이라는 대한민국의 최대 실세(?)는 '나라를 위해서 기업의 목을 비틀어 막대한 돈을 뽑아내고, 그 딸은 '나라를 위해서' 명예와 진리의 전당이라는 대학교를 돈과 권력으로 마음껏 유린할 수 있는 시궁창을 만들고...... 과연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있습니까?
군대도 갔다 온 적도 없는 사람이 시도 때도 없이 북한이라는 말로 논리를 세우는 사람, 한 개인이 웃자고 한 이야기를 국회 국정감사의 증인으로 세우라는 사람, 국정원장 역시 회고록의 내용과 같다는 의견을 발표했다며 하루 만에 들어날 거짓말을 하는 여당 국회의원 등 모두가 '나라를 위해서' 그렇게 한답니다. 정말 '나라를 위해서'인지,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서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우리 눈에는 '정적을 몰아세우기 위한 누명 씌우기, 돈을 뜯어내기 위한 옥죄기, 충성경쟁 거짓말'로 보입니다.
진실로 '나라에 위하여'는 반드시 이 이야기를 해야 할 듯합니다.
제5회 혼불 문학상 수상작 '나라 없는 나라'(이광재 장편소설, 다산책방, 2015)의 심사평에서는 '동학농민혁명이 단순히 몇몇 탐관오리를 징계하기 위한 농민의 전쟁이 아니라 이 땅을 민중 중심의 민주적 세상으로 만들기 위한 위대한 전쟁이었음을 감동적이면서도 밀도 있게 환기시킨' 소설이며 '나라를 위한다는 것은 바로 '민주적 세상을 위한 전쟁을 하는 것'이라고 수상이유를 밝힙니다. 따라서 '나라를 위한다'는 말을 쓸 때에는 '민중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위한 것'이어야 비로소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힘이 정의이고 실력이 정의라는 세상, '돈도 실력'이라는 마녀(馬女)의 말씀(?)처럼 '돈이 정의'인 세상에서 돈의 힘 때문에,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잘 보이위해서 '나라를 위하여'라고 한다면 이미 그 나라는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버스44(车四十四)'와 다를 게 없습니다.
책의 뒤표지의 글이 너무나 선명합니다.
"이것은 나라가 아니다!, 나라는 없다!"
"내가 전봉준이요. 우리는 함께 이 세상을 부술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