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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김정희(金正喜)가 서울 봉은사 전각에『판전(板殿)』이라는 편액을 쓴 글씨이다. 그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금석학자이며 고증학자이다. 노론북학파 실학자이면서 화가며 서예가였다. 한국 금석학의 개조(開祖)로 여겨지며, 한국과 중국의 옛 비문을 보고 만든 추사체가 있으며, 그는 또한 난초를 잘 그렸다. 1809년 생원이 되고, 1819년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에 급제하여 세자시강원 설서, 예문관 검열을 지냈다. 그 뒤 삼사의 언관을 거쳐 효명세자의 사부로써 보도하였으며, 1823년 규장각 대교가 되었다가 충청우도 암행어사로 나갔다. 그 후 의정부의 검상(檢詳)을 1836년 성균관 대사성과 병조 참판, 이조 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830년 생부 김노경(金魯敬)이 윤상도(尹尙度)의 옥사에 연루되어 고금도(古今島)에 유배되었다가 순조의 배려로 풀려났으나 헌종이 즉위 초에 자신도 윤상도의 옥사에 연루되어 1840년에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1848년 석방되었다. 1851년에 헌종의 묘를 옮기는 문제에 대한 영의정 권돈인(權敦仁)의 예론(禮論)으로 예송논쟁이 벌어지자 이에 연루되어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었다가 1853년 풀려났다. 추사와 완당(阮堂)이라는 호를 많이 사용했으나 그밖에 100여개 넘는 별호를 사용했다. 당색으로는 노론으로 외척이었지만 벽파나 탕평당에 들지 않고 북학파가 되었다.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친족이었고, 양어머니 남양홍씨를 통해 남연군과 이종사촌간이 된다. 실학자 박제가(朴齊家)의 문인으로 박지원(朴趾源)의 학통을 계승하였으며, 흥선대원군과 박규수(朴珪壽), 효명세자는 그의 문인들이었다.
이 편액글씨가 걸려있는 곳은 봉은사에 있다. 판전건물(板殿建物)은 남호영기(南湖永奇)스님이 조성한 화엄경소(華嚴經疏)목판을 봉안하기 위해 건립된 전각이다. 이『판전(板殿)』의 편액은 그가 북청으로 유배되었다가 돌아와 경기도 과천에 거처를 두고 서울 봉은사를 오가던 때인 1856년에 쓴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에 쓴 것으로, 그의 마지막 글씨라고 전한다. 71세 노경에 이른 대가의 청고(淸高)한 정신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이 편액의 글씨는 일체의 속진을 털어 고박(古朴)함 만을 액판(額板) 속에 남겨 놓았다.
▶김정희(金正喜)가 봉은사 전각에『판전』이라는 편액글씨를 씀
板殿. 七十一果病中作. 판전. 71세 늙은이가 경기도 과천에서 병중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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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사 김정희의『판전(板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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