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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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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서화평론<181>
▶해설
허련(許鍊)이 그린『일속산방도(一粟山房圖)』란 그림이다. 그는 진도(珍島)에서 허각(許珏)의 5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32세 때 초의선사(草衣禪師)의 소개로 서화를 김정희(金正喜)에게 보였다가, 작품의 솜씨에 감복한 김정희의 부름을 받고 한양으로 갔다. 그는 한양에 머물면서 김정희의 문하생이 되어 사사(師事)를 받았다. 1840년 김정희가 제주도로 유배를 가게 되자 해남까지 배웅하였고, 이듬해 제주도로 건너가 서화수업을 받았다. 1843년 제주목사 이용현(李容鉉)의 도움으로 김정희의 적거지를 왕래하며 서화를 익혔다. 1847년 3번째 제주도를 방문하여 스승 김정희를 찾아뵈었다. 1856년 김정희가 타계하자 고향 진도로 낙향하여 운린산방(雲林山房)을 짓고 정주하였다. 1877년 70세에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을 만났으며, 대원군은 그를 두고 평생에 맺은 인연이 난초처럼 향기롭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스승의 글씨를 따라 화제에 흔히 추사체(秋史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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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치(小癡) 허련(許鍊)의『일속산방도(一粟山房圖)』에 화제를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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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그가 45세 때 정약용(丁若鏞)의 제자인 치원(巵園) 황상(黃裳)에게 선물로 그려준 황상의 별서인 일속산방(一粟山房)의 실경산수화이다. 소치(小癡) ‧ 다산(茶山) ‧ 초의(草衣) 3사람의 정성으로 그렸고, 대체로 인격이 고매하고 학문이 깊은 사대부가 여기(餘技)로 수묵과 담채(淡彩)를 사용하여 그린 간일(簡逸)하고 온화하다. 그림에 대가인 그가 일속산방을 방문하지 아니하고, 초의선사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그렸다. 황상이 기거한 백적산(白蹟山) 산중의 전원적 삶이 선비정신과 스승 정약용에 대한 약속을 행동으로 보여준 인품의 큰 감동이 진하게 녹아있다.
그림 내용은 집을 빙 둘러 에워싼 산자락에 나무 울타리가 있고, 그 안에 3채의 집이 있다. 그리고 집 왼쪽 위편골짜기에 다시 한 채의 작은 집이 보인다. 이 한 채의 집이 일속산방이다. 그는 초의선사가 그림에서는 스승이니 한번 보여드리니 초의선사가 조금 수정하고 바로잡았다고 기록했다.
▶허련(許鍊)의『일속산방도』에 화제를 씀
一粟山房圖, 爲巵園先生雅敎, 癸丑慕春之晦. 小癡 作 草衣 訂. 황상의 별서인『일속산방도』이다. 황상을 위해서 교시한다. 1853년(철종 4) 3월 30일 허련이 그렸으며, 초의선사가 바로 잡아서 고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