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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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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날품팔이를 하는 청년에겐 누이동생과 일곱명의 조카를 먹여살려야 하는 고단한 생이 놓여 있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삶을 살던 그는 어느 날 허기에 못 견뎌 빵을 훔친다. 체포된 그에게 내려진 형벌은 5년 동안의 옥살이었다. 감옥에 갇힌 그는 가족들의 생계가 걱정이 되어 탈옥을 시도한다. 붙들린 그는 다시 19년의 형을 살게된다. 만기 출옥했을 때 중년의 그를 맞은 것은 전과자라는 세상의 따가운 눈총이었다.
1892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 빅토르위고는 ‘레미라제불’이라는 제하의 명 소설의 서두를 이렇게 시작한다. 장발장의 얘기다.
23일 유진룡 전 문화체육부 장관은 특검조사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구속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청와대 수석회의를 통해 불랙리스트 작성지시를 내리고, 이를 실제 적용하도록 강요했다고 했다고 밝혔다.
유 전 장관은 또 유신 이후부터 전두환 시대까지는 블랙리스트 명단을 관리했지만, 민주화가 된 이후 사라졌던 악습이 박근혜 정부들어 다시 부활했다면서 결국 대한민국 역사를 30년 전으로 돌려놓았다고도 했다.
유 전 장관은 또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지기 전에 일부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차별, 배제 행위가 계속 이뤄지는 상황에서 2014년 1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렇게 하시면 안 된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며 "그해 7월 9일쯤 다시 대통령을 만나 '이렇게 하면 정말 큰일 난다"고 재차 말씀을 드렸는데, 대통령은 '묵묵부답'으로 반응했다"는 일화도 공개했다.
그 시간대에 문화체육부 장관 직무대행인 송수근 제1차관과 문체부 간부들은 대국민 사과성명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보루가 돼야 할 문체부가 공정성 문제를 야기한 것에 대해 참담하고 부끄럽다”면서 “통절하게 반성하고 있으며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다”고 말했다. 특별검사가 진실을 밝히는 일에 적극 협조하고 책임도 감내하겠다고도 했다.
헌법에는 표현과 사상의 자유가 명시돼 있다. 정권에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문화 예술인들에게 '좌익(左翼)'이라는 누명을 씌워 국가 지원을 배제한 범법행위는 민주적 기본 질서와 가치를 절대적으로 훼손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대통령, 김기춘 전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은 불랙리스트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입장이다.
인간의 기본적 생명권과 자유가 보장되는 21세기의 백주 대낮에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한 나라의 지도자들이 70-80년대의 전근대적이고 비 민주적인 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은 분노를 넘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른팔과 왼팔이 건강해야 신체적 기능이 원활해 지는 법이다. 역사는 음과 양의 조화 속에서 발전을 거듭해 왔다. 어둠과 밝음, 진보와 보수가 건강하게 존재하는 사회라야만 발전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법이다. 정반합의 원칙은 그래서 발전을 위한 절대적 가치라고 하질 않았는가.
허기를 다스리기 위해 빵 하나를 훔치면서 겪어야 했던 19년의 옥살이와 1만명이라는 소위 좌익계 문화예술인들의 마음의 양식을 뺏으므로써 그들을 허기로 내몬 행위에 대해 2017년 이 나라의 민주적인 법률은 어떤 벌을 내릴 것인가.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캄캄한 밤길을 한 남자가 걸어가고 있는데, 맞은 편에서 등불을 켜든 맹인이 다가왔다.
“앞을 보지도 못하면서 왜 등불을 켜들고 다니십니까”
남자가 묻자 맹인은 이렇게 답을 했다.
“밤길에 등불을 켜고 가면 마주오는 사람이 내가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맞부딪히는 일이 없지 않겠습니까”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다.
대부분 서민들은 ‘등불을 켜들고 어두운 밤길을 가는’ 배려와 본보기의 삶을 살고 있다.
끼니를 아껴 남을 돕고 있고 남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을 돌아보면서 성찰의 삶을 살고 있다. 잘못이 있으면 순순히 잘못한 만큼 우리 사회가 정한 규정에 맞게 벌금을 내거나 옥살이를 하고 있다.
김구는 3.8선을 넘으며 좌우명을 이렇게 노래했다.
“눈 덮힌 들판을 걸을 때 어지러이 걷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후인들의 이정표가 되리니/ 서산대사의 시”
블랙리스트의 존재자체를 모른다며, 몰염치의 길을 가는 이들의 처세를 후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후인들에게 이정표를 남기는 이 땅의 지도자를 언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편집인▪편집국장 김경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