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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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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김정희가『묵란도(墨蘭圖)』를 그리고 화제를 쓴 그림이다. 그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서예가 ․ 금석학자 ․ 실학자이다. 금석학의 개조(開祖)로 여겨지며, 한국과 중국의 옛 비문을 보고 만든 추사체(秋史體)가 있다. 그는 또한 난초를 잘 그렸다. 1819년 식년시(式年試)에 급제하고 1836년 성균관 대사성과 병조 참판, 이조 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830년 생부 김노경(金魯敬)이 윤상도(尹尙度)의 옥사에 연루되어 고금도(古今島)에 유배되었다가 순조의 배려로 풀려났으나 헌종이 즉위 초에 그의 자신도 윤상도의 옥사에 연루, 1840년에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1848년 석방되었다. 1851년에 헌종의 묘를 옮기는 문제에 대한 권돈인(權敦仁)의 예론(禮論)으로 예송논쟁이 벌어지자 이에 연루되어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었다가 1853년 풀려났다. 시도(詩道)에서도 시선제가총론(詩選諸家總論)에서 알 수 있듯이 철저한 정도(正道)의 수련을 강조하며, 스승인 옹방강(翁方綱)으로 부터 소식(蘇軾) · 두보(杜甫)에 이르는 관심의 폭을 보여준다. 그는 고증학의 경향에 따라 시 · 서 · 화 일치의 동일묘경(同一妙境)을 항상 주장했는데, 화풍(畵風) 역시 기법보다는 심의(心意)를 중시하는 문인화풍을 따랐다. 특히 난법(蘭法)은 예(隷)에 가깝다고 보고 반드시 문자향서권기가 있은 연후에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이밖에 대나무와 산수(山水)를 표현하는 데 고담하고 아름다운 필선(筆線)을 사용하여 고상한 기품을 드러냈다. 이외에 전각(篆刻)의 분야에서도 추사각풍(秋史刻風)이라는 독특한 분야를 수립하여 자신의 작품에 낙관(落款)으로 사용했다. 서예에서도 조선 후기의 대가였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서예사상 독특한 지위를 점하고 있다.
이 그림 묵란도는 역시 김정희의 독특한 난화법을 보여주고 있지만, 원나라 때 묵난화가 정사초(鄭思肖)와 청나라 때 묵난화가 정판교(鄭板橋)의 화풍이 보이기도 한다. 담묵으로 잘 그렸다. 난초를 그리는 법과 마음가짐을 정리한 글이다.
▶김정희(金正喜)가『묵란도(墨蘭圖)』를 그리고 화제를 씀
此鳳眼象眼. 通行之規. 非此. 無以爲蘭. 雖此小道. 非規不成. 況進而大於是者乎. 是以. 一葉一瓣.自欺不得. 又不可以欺人.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是以. 寫蘭下手. 當自無自欺始. 이 봉(鳳)의 눈, 코끼리의 눈은 통행하는 규칙이니, 이것이 아니면서 난이 되기 어렵다. 비록 이것이 소도(小道)이나 규칙이 아니면 이룰 수 없으니, 하물며 나아가 이 분야에 대성할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일엽 일판을 스스로 속일 수도 없고, 또 남을 속일 수도 없다. 여러 사람이 보고 있는 바이며, 여러 사람이 손가락질하는 바이니 그 얼마나 엄격한가. 이로써 난초를 그리고자 손을 댈 적에는, 마땅히 스스로 속임이 없이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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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사김정희의『묵란도(墨蘭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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