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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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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문백민(文百敏)의 초상인『귤수소조(橘叟小照)』를 미산(米山) 허은(許溵)이 그리고, 아버지 소치(小癡) 허련(許鍊)이 화제(畵題)를 쓴 초상화이다. 허은은 허련의 장남으로 그림에 재주가 남달랐으나, 조졸(早卒)한 '큰 미산(米山)'이다. 허련의 큰 아들 허은은 그림공부를 열심히 한 까닭에 실제로 아버지보다, 솜씨가 뛰어나다는 평을 자주 듣곤 했다. 워낙 기대가 큰 아들이라서 허련은 인물 좋고, 재주가 좋은 큰 아들 허은을 편애한 대신, 넷째 아들 허형(許瀅)에게는 홀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허련이 아끼던 큰 아들 허은이 3년을 병으로 앓다가 34세를 일기로 요절하자, 큰 슬픔에 잠기기도 했다. 후에 넷째 아들에게 허은의 호(號)인 미산을 다시 물려줄 정도로 허은을 사랑했다. 그래서 세간에서 자주 헷갈리는 미산이라는 호는 '큰 미산'은 허은이고, '작은 미산'은 허형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귤수소조』라는 제목의 초상화는 허련이 제주도에 사는 문백민이라는 사람을 일찍이 알고 지냈다. 허련은 김정희(金正喜)의 남종화풍 계보를 잇는 수제자로, 호남 화단의 주역이기도 하다. 오늘날 호남화단에서 한국 남종화의 종주(宗主)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허련이 있었던 때문이고, 호남제일의 화가 집안이 된 이유도 대를 이어 화업을 지켰기에 가능했다.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본관이 남평(南平), 1810년에 나서 63세로 타계했으며, 자는 공무(公武), 호는 귤수(橘叟)이다.
▶허은(許溵)이『귤수소조』를 그리고 아버지 허련(許鍊)이 화제를 씀
귤수의 작은 초상. 귤수는 탐라인이다. 내가 십 수 년 전에 제주바다를 건너 3번 제주에 왔는데, 귤수 문백민은 남달리 알고 지내온 사람인데, 오늘 갑자기 내가 머무는 곳에 찾아 온 것 역시 다른 뜻이 있기 때문이다. 내 아들 허은에게 이 어른의 초상을 그리게 하면서 잘되고 못된 것을 따지지 말자 하여, 나는 비단바탕의 여백에 다음과 같이 찬한다. '그대 집울 안의 과원에 두툼한 귤잎 눈 내린 듯하고, 천 그루 귤나무는 맑은 꽃향기 가을 귤을 그려보게 하네. 해가지는 줄도 모르게, 귤나무 사이를 노는 것을 그 무엇에 비교하랴. 이런 정취에 깊이 빠져들까 용기를 내어, 물러나와 급히 가는 세월에 묻히고 마네.' 1863년(철종 15) 이른 봄 완성의 선교 옆 객사에서 소치 허련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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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허은(許溵)의『귤수소조(橘叟小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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