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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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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가『검선관란(劒仙觀瀾)』을 그리고 화제를 쓴 그림이다. 그는 조선 후기에 화가로 영정조의 문예부흥기 부터 순조연간 초기에 활동했다.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사능(士能), 호는 단원(檀園) · 서호(西湖) · 취화사(醉畫士) · 고면거사(高眠居士) · 첩취옹(輒醉翁) · 단구(丹邱)이다. 만호를 지낸 김진창(金震昌)의 손자인 김석무(金錫武)의 아들로 태어났다. 화원 집안인 외가로부터 천부적 재질을 물려받은 듯하다. 어린 시절에 강세황의 지도를 받아 그림을 그렸고, 그의 추천으로 도화서 화원이 되어 정조의 신임 속에 당대 최고의 화가로 자리 잡았다. 산수, 인물, 도석, 불화, 화조, 풍속 등 모든 장르에 능하였지만, 특히 산수화와 풍속화에서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산수화의 경우에는 전기에는 원체화적 경향을 띤 정형산수를 많이 그렸는데, 1778년 작인『서원아집도(西園雅集圖)』6폭병풍과 선면화 등에 잘 나타난다. 50세 이후의 후기에는 한국적 정서가 담긴 진경산수를 즐겨 그리면서 단원법이라 불리는 보다 개성이 강한 화풍을 이룩하였다. 도석인물화에서도 자신만의 특이한 경지를 개척했다. 도석인물은 전기에는 주로 신선도를 많이 그렸는데, 굵고 힘차면서도 거친 느낌을 주는 옷 주름과 바람에 나부끼는 옷자락 그리고 티 없이 천진한 얼굴모습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이 시기의 신선묘사법은 1776년에 그린『군선도병(群仙圖屛)』에서 전형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후기가 되면 화폭의 규모도 작아지고 소방하면서 농익은 필치로 바뀌게 된다.
이 그림은 바닷가 절벽의 바위위에 파도를 보며, 날아가는 두루미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검(劒)들은 선비의 모습이다. 칼을 들고 있는 선비는 누구일가? 문(文)에 치우쳤든 조선시대의 감각으로는 쉽게 짐작하기 어려운 이 인물은 누구일까?
▶김홍도(金弘道)가『검선관란(劒仙觀瀾)』을 그리고 화제를 씀
萬里西風一劒寒. 만리서풍에 칼 하나가 차갑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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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원김홍도의『검선관란(劒仙觀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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