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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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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의『주감주마(酒酣走馬)』을 그리고 화제를 쓴 그림이다. 그의 본관은 해남(海南), 자는 효언(孝彦), 호는 공재(恭齋) · 종애(鐘崖)이다. 그는 겸재 정선(鄭歚),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과 함께 조선 후기의 삼재(三齋)로 불린다. 윤선도(尹善道)의 증손이다. 1693년(숙종 19)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남인계열이었고, 당쟁의 심화로 벼슬을 포기하고 학문과 시 · 서 · 화로 생애를 보냈다. 경제 · 병법 · 천문 · 지리 · 의학 · 음악 등 각 방면에 능통했으며, 실학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화풍은 아들인 윤덕희, 손자 윤용에 의해 계승되었으며, 아울러 강세황, 유경종 등 근기 남인 서화가들도 그의 영향을 받았다. 조선 말기의 화가 허련(許鍊)도 해남의 녹우당(綠雨堂)에 와서 그림을 공부하면서 전통 화풍을 익혔다. 그의 사실주의적 태도와 회화관은 정약용(丁若鏞)의 회화론 형성에 바탕이 된다. 학자로서의 뚜렷한 업적은 남기지 않았지만, 풍부한 지식과 실학적 태도는 이서, 이익 형제들과 영향을 주고받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서예 부분에서 그는 자신의 시대가 서도(書道)가 무너진 시대라고 규정하였다. 이서와 함께 서예의 정도 회복을 위하여 왕희지체를 바탕으로 동국진체(東國眞體)를 창안하여 조선후기 서예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검은 수염에 부리부리한 눈의 자화상으로 유명한 화가가 윤두서이다. 그와 말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림 중에는 말 그림도 꽤 여럿이다.
이 그림은 당나라 때 시 한 구절을 빌어, 술 취한 채 말을 몰고 가는 장부를 그린 그림이다. 약간 제쳐진 상체와 손의 채찍에서 음주기마의 분위기를 냈다. 구불구불한 나무와 방사선 솔잎 그리고 각지게 걲인 옷 주름에서 약간 중국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윤두서(尹斗緖)의『주감주마』에 그리고 화제를 씀
酒酣白日暮, 走馬入紅塵. 술이 거나한데 해는 저물어, 말을 몰로 도성으로 돌아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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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재 윤두서의『주감주마(酒酣走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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