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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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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어진 듯 겉치레로 하는 말은 꽃이라면, 지극하고 바른말은 열매이다.
쓴 말은 약이 되고 달콤한 말은 병이 된다(貌言華也 至言實也 苦言藥也 甘言疾也).“
사마천이 엮은 『사기』 상군열전에서 인용한 글이다. 여기에서 꽃이란 절정의 화려함으로서의 꽃보다는 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조량이라는 자가 상군(상앙)을 찾아와 친구 되기를 원하고 직언을 해도 죽이지 않겠냐는 물음에, 상군이 약조를 하며 하는 말이다. 하지만 조량이 “파멸은 한 발을 들고 넘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빠를 것이다”는 그의 충고를 듣지 않아 결국 상앙은 거렬형 즉, 수레에 찢겨져 죽고 가족도 모두죽임을 당했다. 진나라를 부국강병의 초석을 마련하고 훗날 천하를 통일 할 기틀을 마련한 상군이지만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 하였다.
“좋은 약은 입에는 쓰나 병에는 이롭다(良藥苦於口 利於病)”는 『공자가어』의 말도 있다. 이 모두가 충고의 말이나 진언은 듣기는 괴로울지라도 새겨들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관상의 고서인 『마의상법전서』 의 서문에는 이런 글이 있다.
“사람의 관상을 보는 방법이 오래되었다. 공자와 맹자께서 사람을 보는 방법이 논어와 맹자에 나타나 있으니, 어찌 권도*(權道: 일반적인 행동규범이 아닌 특수 상황을 전재로 나타나는 행동규범의 정당성이다)가 없겠는가?
그러나 사람의 길함과 흉함, 장수와 요절, 부귀빈천이 모두 관상에 매인 것이 아니요, 그것에 무관한 것도 아니다. 관상에는 정해진 이치가 있다. 그렇지만 관상을 보는 사람이 바르게 보지 못하고, 바르게 보지 못하는 사람이, “이와 같은 사람은 ‘길(吉)’하다고 하고, 이와 같은 사람은 오래 살고, 일찍 죽고, 부귀빈천하다”고 말한다면 어찌 맞는 말이 되겠는가?......”
상(꼴)은 거짓이 있을 수 없다. 다만 그 상을 보는 사람이 잘 못 볼 뿐이다. 참말과 거짓말도 정해져 있다. 다만 우리가 가려 보지 못 할 뿐이다.
눈길을 밟으며 들길을 갈 때에는 반드시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걸어온 자취가 마땅히 뒷사람의 본보가가 된다.(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蹟 遂作後人程)는 서산대사의 시의 구절처럼 후손들의 준엄한 역사적 판단을 안다면 말을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가리고 또 가려내어 차마 입에 담지 말아야 할 저질적 언어로 세상에 물들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혹시 지금 우리들은 하나의 사안을 두고 각자가 생각하는 진영에 먼저 맞추어두고서 각자의 주장을 과격하게 쏟아 내고 있지는 않았는가?
옛말에 ‘지각이 있는 사람은 쉽게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공자는 ‘향원(鄕原)은 덕(德)을 도둑질 한다’고 했고 맹자는 사이비(似而非)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릇된 것이 있어도 꼬집어 말 할 수 없고, 꾸짖으려 해도 꾸짖을 것이 없고, 유속(流俗)에 함께하며 옳지 못한 세상에 합해진다. 거처할 때에는 충(忠)과 신(信)이 있는 것 같이 보이고, 행동에는 청렴과 깨끗함이 있는 것 같아 보여 대중들이 모두 기뻐한다. 이것을 보고서 스스로 하는 일이 옳은 일이라고만 여겨 덕(德)을 도둑질 하는 것이다.”고 했다.
농부가 논에서 피(稷)를 가장 싫어하는 것은 벼를 닮아 있기 때문이고, 공자와 맹자가 향원과 사이비를 미워하는 것은 덕을 도둑질하기 때문이다. 큰 거짓말은 참말을 닮아 있고, 큰 불선(不善)은 선(善)을 닮아 있다. 살피고 또 살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때 보다 사안을 보고 바르게 가려낼 혜안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權道 (권도) : 『맹자』이루상편에 ‘형수의 손을 잡지 않는 것이 예(禮)이지만 물에 빠졌다면 손을 잡아 살리는 것이 권도이다’고 했다. (嫂溺援之以手者는 權也라)
<저자소개>
원정서당 훈장/금오경학연구소 소장
글을 시작하며...
몇 달 전, 오래전 고전을 함께 읽었던 인연으로 안정분 대표님께서 찾아와서 원고를 권하고 가셨다. 워낙이 글재주가 없는 것을 스스로 잘 알기에 “고민해보겠습니다”라고 정중히 사양을 했었다. 몇 주 전엔 아내가 안 대표를 꽃집에서 우연히 만나 투고를 설득해 달라고 하고 가셨단다.
아내가 저녁에 하는 말이 “해달라고 부탁 할 때 해주세요, 당신이 강의 중에 너무 사양하는 것도 예가 아니라 했잖아요” 라고 한다.
필자는 아내의 말을 잘 듣는 것이 현대 남자의 사명이라고 들었기에(^^) 이 말을 핑계 삼아 용기를 내어 봅니다. 어쩌면 글을 쓰는 것이 화가 될지도 모르지만 필자가 스스로에게 하는 군담과 다짐의 말들이라고 독자들이 생각해주기를 바라면서 글을 적어 볼까합니다. 결코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는 고전의 글들을 가지고 독자 여러분들을 찾아뵐 것을 약속드리며 이렇게 지면으로 첫 인사의 글을 적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