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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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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는 생명공학을 바탕으로 인간의 미래를 제시하여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더구나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된 《호모 데우스》를 통해 우리 한반도의 미래를 서문에서 언급한 바 있는데, 이미 많은 이들이 흥미있게 읽었으리라 생각된다. 역동적인 자유주의 국가인 남쪽과 가난하고 무정한 독재국가인 북쪽 간의 차이를 밤에 찍은 위성사진을 통해 비교하면서, 북한은 어둠에 휩싸인 반면 남한은 빛의 바다라 표현하였다. 이러한 근본적인 차이를 지닌 한반도는 언제라도 핵전쟁이 터질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있음을 상기하면서, “폐쇄된 공간에서의 기술혁명”이 북한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해 몇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첫째, 새로운 기술적‧경제적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경우에는 자국민을 부양하지 못하고 이웃 나라들을 공갈 협박하다가 결국 붕괴하리란 전망. 둘째 시나리오. 중앙집권화된 저개발 독재국가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 모든 차량이 자율주행하는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된다는 것. 세 번째는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을 이용해 전체주의적 디스토피아(암흑세계)가 되는 것이다. 역사상 최초로 모든 국민이 매 순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내어, 지도자의 분노 정도에 따라 바로 강제수용소에 보낼 수도 있다. 이는 하라리의 개인견해이지만, 우리의 미래와 결코 무관하다고 할 수도 없어 섬뜩한 면이 있다.
그럼 빛의 바다인 남한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얼마 전 우리는 촛불 시민혁명을 통해 우리가 지키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였다. 그것은 ‘국민주권의 민주주의’일진대. 불과 몇 년이 흐른 오늘날 우리 사회는 기막힌 ‘참상’을 겪고 있는 중이다. 촛불을 통해 지키고자 한 가치와는 너무나도 다른 방향에서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 있다. 역사뿐 아니라 사회의 주요 의제마다 논쟁으로 치닫고, 경쟁 논리와 불평등, 자본주의 신화와 성공신화 자랑, 이른바 ‘삼포 세대’인 20대로 하여금 꿈을 잃게 한 우리 기성세대의 몰인식으로 사회는 분열을 거듭하고 있다.
갈등사회: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으로부터 촉발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처럼 보이는 친일논쟁, 광주항쟁의 진실에 대한 해명되지 않은 논란들, 선별과 보편으로 나뉜 복지논쟁, 검찰 개혁과 공수처 문제 등은 성찰의 자세로 그 배경과 과정, 결과에 대하여 견해 간의 차이를 조정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진영논리에만 묻혀 있어 지켜보는 국민들의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있다.
불평등 구조: 불평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없는 계층’이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장 지글러는 “문제의 핵심은 사회구조다. 식량 자체는 풍부하게 있는데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확보할 경제적 수단이 없다”고 했다. 비단 경제적 불평등뿐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을 정치권이 제대로 대변하기는커녕, 대안 부재가 불평등 구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약자 고립: 피해자의 호소에 대한 해명도 없이 가해자의 혐의는 지워지고, 의혹을 받은 이는 아무것도 잃지 않고 더 잘 살아가는 듯하다. 책임을 묻기 위해 어렵사리 용기를 낸 이들만 속 좁은 자로 기억될 뿐이다. 법의 처벌도 없고, 진실도 가려진 채 아프다는 목소리를 밖으로 낸 사람만 벌거숭이가 되어 고통에 몸서리를 치는 사회다.
극혐 현상: 코로나19를 무색하게 만드는 전염병이 ‘혐오감정’이다. 사람이나 집단을 막론하고 미워하고 싫어하는 대상을 배제하고 제거하려 든다. 타협과 조율은 애시당초 싫다. 싫은 감정이 혐오가 되고, 그 정도가 심해져 극혐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진 지도 오래. 혐오 대상을 근거없이 일반화하고 집단화하여 싸잡아 욕하며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과학기술로 북한은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암흑세계가 될 수도 있다. 그럼 경제적 기준으로 성공을 이룬 남한은 정신적 불행감으로 인해 앞날이 어떻게 될까. 학벌, 미모, 고급 브랜드를 선호하고 과소비에 빠져있는 사람들과 약해진 자존감으로 패배감이 커지면서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함께 가고 싶은 미래가 있을까. 우울증과 자살률이 증가하면서 사회적 불안과 갈등도 그 어느 때보다 심화되고 있다. 지속적인 갈등과 불평등은 사람들을 우울하게, 비참하게 만든다. 국가의 부가 커지면서 소수가 그 몫을 차지하고 나머지가 가난하게 살아간다면 ‘1인당 국민소득 4만불’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제 우리에게는 한가지 선택지가 있을 뿐이다. 상대적인 약자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데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스스로의 허물을 고쳐 따스한 세상을 만드는 것만이 대한민국을 계속 빛의 바다로 남을 수 있게 할 수 있다.
<저자소개>
마을활동가・선주문학회원・생활공감정책 참여단・구미시 신활력 플러스사업 추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