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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을 매니저ㆍ구미시 생활공감정책참여단 대표ㆍ선주문학회 회장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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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데 한글이 다 숨었다는 걸 알았다. 제 아무리 숨어봐라 인자는 다 보인다”고 시를 쓰신 할머니는 여든이 넘어 한글을 배우셨다고 한다. 배움으로 인해 그간의 분한 마음이 다 사라져 버렸다는 한 어르신은 “글자만 보면 눈물이 난다”고 하신다. 눈물이 나는 이유는 뭘까. 노안이라 글자를 보면 눈이 아파서일까. 안 하던 공부를 하니 두통이 생겨서일까. 글자가 어려워 신경쓰여서일까.
오늘날 웬만한 자리에서 이런 글자 이야기는 흥미를 끌지 못한다. 얼마만큼 배웠는지에 대한 경쟁력 있는 학력과 학식을 주제로 삼아야 이야깃거리를 제공한 축에 든다. 학창시절 성적이 좋았고, 지금은 지식과 함께 온전한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야말로 좌중의 시선을 받으며, 이야기의 주인공 행세를 할 수 있다. 물론 그 뒤로 이어지는 이야기도 높은 학력과 금권 그리고 권력과의 거리가 가까운 사람의 것이 될 확률이 높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돈과 명예와 연관된 지식이나 기능, 성적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묘히 속이는 사람, 높은 학력을 가진 무지한 사람, 도덕교육을 받은 비도덕적 행위, 종교를 빙자한 비신앙적 사람, 명문대를 천박하게 이용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별로 문제 삼지 않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이쯤되면 학교 교육이 늘상 그렇듯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학교만큼 말이나 글이 풍요로운 데가 또 있을까. 읽고 쓰고 말하기를 기본으로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우리의 학교 교육은 일찌감치 개인의 이익 앞에 매몰되어 행복을 추구하는 공동체성을 상실한 지 오래다. 그 숱한 말과 글을 통해 마음과 진실을 나누기보다는 나에게 어떤 이득이 돌아오는지, 나만 손해보는 건 아닌지 따져보는 학습장이 되어 버렸다. 많고 많은 것을 배워 학교를 졸업하면 자기방어에 투철하게 되고 심지어는 그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 이익의 극한을 향해 치닫는다. 오로지 자신의 생각만을 중심으로 하기에 시대의 아픔이나 주변의 고통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지식 속에는 함께 살아가는 가능성에 대한 지혜는 애초 없기 때문이다.
글이나 말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 내뱉은 말에 대해 책임을 지거나 속죄하는 게 아니라, 또다른 궤변을 위한 준비 장치가 된다. 그들도 한때는 정의와 공정을 추구하고자 온몸을 불태웠을 것이다. 올바름에 대한 열망을 생존을 위한 도구로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배움은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누구를 아끼며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는 바탕이 되어야 함에도, 언젠가부터 그 책임을 비트는 원천 기술로 쓰여지고 있다. 드디어 오만으로 위선을 호위하고 무지는 성찰을 막아 버렸다. 가치나 신념의 중요성을 얼마나 오용하고 오염시켰는가. 말의 뜻을 다른 용도로 함부로 쓰며, 제 입맛에 맞게 짓뭉개 버린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혼란함을 넘어 언어에 대한 적의가 다 생길 지경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속의 국가는 기록을 조작하고,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언어와 사고를 통제하여 영구적인 집권을 꾀한다. 신어 사전을 만들어 구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막으려 한다. 국민들의 다양한 사고를 단순화시키기 위해 어휘의 수를 줄이거나 어휘의 길이를 줄이는 작업을 한다. 대중을 우매하게 보고 언어조작을 통해 지배하려고 하는데, 이러한 작업은 언어학자이며 신어의 전문가인 사임이란 인물이 진행하고 있다. 언어의 최고 전문가가 언어의 의미를 파괴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인물을 일러, 신중함이 없고 우매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오웰의 예리한 통찰은 이 소설이 도저히 1948년에 나온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게 한다. 어떻게 오늘날 한국사회의 <언어난도질>을 이렇게도 정확하게 내다 보았을까. 지적知的인 인물들에 의한 끔찍한 문해文害 현상을 말이다.
인간 두뇌의 정보량은 약 100조 비트 정도라 한다. 대략 2000만 권의 책더미가 되는 셈이다. 두뇌가 차지하는 공간은 협소하지만 뇌의 용량은 이렇게 상상을 초월한다. 이른바 학자연하는 사람들도 몇천 권 정도의 책으로 머리를 채울 것이다. 그렇다면 비어있는 공간에 대해 겸손해해야 하지 않을까. 평생 자식을 위해 헌신하다가 인제 한글을 배우고, 아는 글자에 스스로 감격해 눈물짓는 어르신들. 막 익힌 글자에는 한 세상이 다 담겨있을 것이다. 그 글자는 자신을 기쁘게 하지만,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리고 마을을 밝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