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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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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가 낳은 명창 박록주 선생의 노래비가 그의 고향인 고아읍 관심리 인근(고아읍 선산대로 859)에 세워졌다.
지난 28일 열린 제막식은 구미에서 활동하는 젊은 놀이패인 노리광대의 판굿과 대구시 무형문화재 8호 판소리 흥보가보존회 윤정애, 전미애씨의 판소리 흥보가 박타는 대목으로 시작돼 구미소리꾼 최갑수, 정정숙, 김정연씨가 “인생백년”을 제창으로 마무리됐다. 특히 '인생백년'은 우리인생의 이정표와 삶의 가치를 알려주는 곡으로 박록주 선생이 60세 무렵 작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제자 박송희가 곡을 붙힌 단가로 많이 불려지고 있다.
노래비 건립을 추진한 이상돈 따숨 대표는 "박록주 선생님은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서 평생 판소리만하면서 판소리계에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이라며 "선생의 태생지인 구미에서 선생의 존재와 위엄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고 무엇보다 사라질 수밖에 없는 콘텐츠라고 생각하는 판소리와 국악예술을 박물관에 보내지 않으려고 노래비를 세웠다”며 노래비 건립에 대한 이유를 밝혔다.
“그 어떤 길이라도 자주 다니지 않으면 없어진다. 그래서 그 길이 없어지기 전에 시작했고, 지금 시작은 작은 노래비 하나지만 앞으로 구미에 박록주 선생의 판소리가 항상 들리게 하고 판소리 때문에 구미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또 박록주 선생의 이름을 건 상설국악 콘서트홀을 건립하고 싶은 작은 바람과 나아가서 선생의 숭고한 업적이 널리 알려지고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의 판소리가 우수함을 알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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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막식에 참석한 정근수 경북도의원과 최경호 대한노인회 구미지회장, 김경애 한국국악협회 경북도지회장도 축사를 통해 "박록주 선생과 관련된 사업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며 동참의 뜻을 밝혔다.
명창 박록주 선생(1905~1979)은 구미시 고아읍 관심리에서 태어나 12세 (1916년) 동편제 판소리 대가 박기홍에게 춘향가를 시작으로 당대 최고의 명창들에게 〈흥보가〉등 판소리와 단가를 두루 배웠다. 22세에 콜럼비아레코드 음반을 취입했으며 경성방송국 출연 등으로 전국명창으로 이름을 날렸다. 1964년 우리나라 여성 최초로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1973년 흥보가 예능보유자로 등재됐다.
선생은 특히, 성량이 크고 모지락스럽게 맺고 끊는 창법을 구사했으며 여성임에도 남성적인 동편제 소리의 맛을 제대로 구현했던 명창으로 고전 판소리와 현대 판소리의 가교역활을 했다고 평가된다. 조선시대 최고의 명창으로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시대에도 우리의 전통 음악을 잘 계승하시고 후진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여 박송희, 조상현,이옥천 등 수 많은 제자를 길러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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