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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재원 마을 매니저ㆍ구미시 생활공감정책참여단 대표ㆍ선주문학회 회장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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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했는데, 특정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한 것은 UNCTAD 설립 57년 만에 처음이라고. 명실상부한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나 2년 연속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청되는 등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점을 반영했다고 한다. 한국의 합류로 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 등으로 구성되어 있던 선진국 B그룹은 32개국으로 늘어났는데, 사실 한국은 이전부터 벌써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점차 이동하고 있었다. 10여 년 전부터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활동을 했으며, 22개 주요 채권국협의체인 ‘파리클럽’에 21번째로 가입하면서 선진국으로 분류되었고, 2019년 세계무역기구(WTO)에서는 공식적으로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기도 했다.
한국이 선진국이 되었다는 보도에 환호를 해야 하는데도 찜찜한 이 느낌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기다리고 기다렸단 듯이 아니면 세계인을 향해 보란 듯이 손을 흔들며 드디어 우리가 해냈다는 시그널을 보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선진국이 되었다는데도 한국의 선진국민들은 서로가 헹가래치며 좋아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선진국으로서 선진국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이 귀찮아서일까. 대량 사망에 이른 코로나 대응방식을 보고 선진국이란 이름을 시틋하게 생각해서일까. 하도 후진국형 사고가 많이 일어나니 아직 어림없다고 생각해서일까. 어쨌든 유엔의 발표에 시큰둥한 건 사실이다.
여기 두 사람이 있다. 갑은 병으로부터 십만 원을 받기로 했다. 갑은 그 돈을 을에게 얼마간 주기로 한다. 금액은 갑의 마음대로이다. 그런데 을이 받기를 거부하면 갑도 병으로부터 돈을 받을 수 없다. 갑이 을에게 얼마를 주는 게 적정할 것인가. 또 을은 어떤 생각을 가져야 갑으로 하여금 꼭 돈을 받을 수 있게 할 것인가. 갑이 많이 취하고 을에게 적게 제시한다면, 거부함은 물론 불공정함을 호소할 것이다. 이른바 최후 통첩게임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남보다 나를 먼저 생각했기에, 항상 내가 많이 차지하고 남에게는 적게 주는 쪽이었다. 결국 돈만 바라 보았고 내 이익만 챙기기에 바빴던 것이다. 이제는 먹고 살만해졌으니 이웃을 바라볼 때가 되었다. 돈에서 벗어나 인간의 소중함과 함께 공동체 의식이 중요해졌다. 갑은 많이 주려고 생각하고, 을은 적게 받아도 좋다는 생각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서로가 이런 생각을 가질 때 갑과 을은 상생하게 된다.
상생과 상호존중, 수평적 태도와 공정은 선진국 사회를 나타내는 지표가 되는 말들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이런 말들이 보편적일 정도로 쓰이지는 않는다. 지난 2016, 2017년에 있었던 촛불집회엔 연인원 천만 명이 넘는 시민이 자발적으로 광장에 나아가 민주화 운동을 하였다. 그 많은 사람들의 평화적이고도 상호존중하는 자세는 선진국 시민으로서의 모습과 새로운 정치의 희망을 보여주기에 충분하였다. 물론 이후에 들어선 정권이 국민들의 순수한 열망을 제대로 꽃피우지 못해 아쉽기는 하지만, 이른바 선진국 국민으로서의 자질을 증명하는 데는 모자람이 없었다. 집회에는 모든 연령대가 참가했지만, 광장을 주도한 것은 분명 젊은 세대였다. 촛불을 든 그때의 젊은이들은 신분의 세습화에 절망했고, 오늘의 젊은이들은 그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생의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다.
제1 야당의 대표로부터 불어온 바람이 팬데믹 시대의 영 파워를 형성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걸핏하면 40대를 지칭하여 젊은 피 운운하면서 구색갖추기로 제 편에 끼워 넣곤하던 그 사십 대도 이젠 철이 지난 느낌이다. 6070 세대가 힘을 쓰는 정치판이었으니 40대를 무척 젊게 보았겠지만, 지금은 젊은 피라고 할라치면 20대나 30대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들 세대들이 국회의원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사회에서 목소리가 커진다고 해서 나이든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사라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상생에 대한 유연하고도 열린 사고는 한국의 미래를 열어가는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다. 나이와 무관하게 능력에 따라 사람을 뽑고, 필요하면 언제 어디서든 함께 일하자는 생각이야말로 우리나라를 진정한 선진국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이나 군대에서의 서열은 직장으로 이어지고,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이 영향력 있는 지위에 오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능력과 역할은 무시하고 서열이나 나이로만 위아래를 구분하던 사람이 그대로 선진국민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열 중심의 문화나 환경에서 살아온 기성세대는 반성과 함께 변화를 수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당장에는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이미 시대가 변했음을 자각해야 한다. 젊은 세대에게 좀 더 관대해져야 하며, 상생하고자 하는 그들의 생각을 존중해주는 것이 선진 한국에 동참하는 길이 될 것이다. 2030 세대야말로 현 세대와 미래 세대를 이어줄 수 있는 믿음직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가.